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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The Mission, 1986), 한 사람의 참회와 사라진 과라니 영화 너머의 세계와 시대 영화 '미션'은 조용하고 아름다운 화면 속에 인간, 믿음, 폭력, 구원 같은 큰 주제를 담으려 한다. 예수회 선교사들의 고뇌와 선택, 과라니 공동체(Guaraníes)의 질서와 자존, 그리고 제국의 정치적 배신이 한 이야기로 얽히지만, 영화가 만들어내는 숭고한 분위기에는 결국 담아내지 못한 역사와 말할 기회를 얻지 못한 이들의 자리가 있다. 배경으로 등장하는 마드리드 조약(Treaty of Madrid, 1750)은 단지 국경을 나눈 정치적 사건일 뿐이고, 과라니가 인간인가 하는 더 오래된 질문은 이미 200년 전 바야돌리드 논쟁에서 제기된 것이었다. 영화는 이 질문에 대한 고민 없이, 과라니를 구원의 대상, 믿음의 수혜자로만 그리면서 그들만의 신념이나 문화는 거의 보여주지 .. 2025. 5. 3.
왕의 침묵 속에 사라진 이름, 자크 까르티에(Jacques Cartier) 영화, 드라마 한 편 없는 자크 까르티에 자크 까르티에는 프랑스 대항해 시대의 주요 탐험가였지만, 실패한 인물로 기록되며 역사 속에서 잊혔다. 프랑스는 까르티에의 실패를 국가적 수치로 받아들였고, 그의 업적을 제대로 조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까르티에가 실패한 진짜 이유는 개인 능력의 한계보다 구조적 문제에 있었다. 프랑수아 1세는 대항해 경쟁에 뛰어들면서 충분한 지원 없이 과도한 기대만을 걸었고, 까르티에는 부족한 인력과 자금,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신대륙 개척을 강요당했다. 실패는 구조적으로 예정되어 있었으며, 탐험의 결과를 개인 책임으로만 몰아가는 것은 부당하다. 까르티에는 미지의 환경, 극심한 기후, 원주민과의 충돌, 식량 부족 등 수많은 악조건 속에서 고립되었고, 이는 500년 전 북미에 진.. 2025. 4. 27.
향수, 2006; 악취를 감춘 프랑스, 향기로 유럽을 지배하다 프랑스 향수 이야기 하려고 향수 영화를 들먹거리기 18세기 프랑스는 악취와 불결함이 일상적인 세계였다. 파리 거리에는 오물과 분뇨가 흘러넘쳤고, 사람들은 오랜 세월 목욕을 두려워했다. 흑사병 이후 물에 젖은 피부로 병이 퍼진다는 믿음이 퍼졌기 때문이다. 영화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는 이런 더럽고 무질서한 세상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냄새와 죽음이 얽혀 있는 그르누이(Grenouille)의 삶은 당시 프랑스 사회의 어두운 뒷모습을 압축한다. 악취에 찌든 세계에서는 향기가 곧 생존과 품위를 나누는 경계가 된다. 사람들은 썩은 냄새 속에서 몸을 보호하려고 향수를 뿌렸다. 귀족과 부르주아는 가발, 옷, 장갑, 부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향기를 입혔다. 향수는 개인의 위생을 .. 2025. 4. 26.
노스맨, 2022: ‘바이킹’은 직업이 아니야, 알바 뛰다 나라 세운 녀석들! 영화 노스맨은... '노스맨(The Northman, 2022)은 잔인하고 처절하다. 영화 속 폭력은 동기가 충분하다고 끊임없이 설명한다. 주인공의 분노는 충분한 이유를 갖고 있고, 관객은 그의 복수를 따라가게 된다. 영화 속 바이킹의 문화와 종교는 낯설고 이질적이지만, '복수' 라는 각설이 레파토리는 여전히 누가 어떻게 표현했느냐에 따라 접근법도 시선의 방향도 달라진다. 무슨 게임 속에서나 보던 ‘버서커’는 눈이 돌아간 전사, ‘블러드 이글’은 복수의 바이킹식 표현이지 그다지 특별하지는 않았다. 선상 장례 역시 바이킹만의 의례라기보다는, 유사한 전통이 여러 문화에 존재하여 감흥이 떨어졌다. 영화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햄릿》 원형이 된 삭소 그라마티쿠스(Saxo Grammaticus)의 '덴마.. 2025. 4. 20.
1492 콜럼버스, 1992; ‘발견’이 아니라 ‘고장’, 콜럼버스가 망가뜨린 세계 영화를 빌미로..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는 자신을 신의 사명을 수행하는 존재로 여겼고, 신대륙 발견을 단순한 항해 성공이 아닌, 성서적 서사 안에 배치하려 했다. 1492년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을 때조차 그는 그곳을 인도라 확신했고, 이후에도 그 믿음을 꺾지 않았다. 이건 지도상 오류가 아니라 신학적 구조물 위에 놓인 확신이었다. 그의 항해는 성경의 예언을 이루는 과정이었고, 그 안에서 ‘실패’란 단어는 허용되지 않았다. 신의 도구는 의미 없는 땅에 닿을 수 없다고 그는 믿었다(West & Kling 1991). 그의 신앙은 내면에서 길어 올린 성찰이 아니라, 굳고 단단하되 유연하지 못한 철근 같은 신념이었다. 복음 전파는 그의 공식적 이유였지만, 그 땅의 사람들은.. 2025. 4. 19.
잔다르크, 1999; 신의 무기로 써먹고, 마녀로 태워죽인 교회 영화를 빌미로 잔다르크 들먹이기 뤽 베송(Luc Besson)의 1999년 영화 '잔다르크(The Messenger: The Story of Joan of Arc)'는 잔 다르크라는 실존 인물을 고통스러운 환영과 신비주의적 환상 속에 배치하며 이야기를 짜내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학대와 충격을 경험한 한 소녀가 초자연적 목소리를 듣고, 그것을 통해 전장의 영웅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구조는 인물의 핵심을 모호하게 만든다. 잔다르크는 역사적 인물이며, 프랑스를 구원한 지휘관이자 왕권의 정당성을 대중 앞에서 승인한 정치적 인물이었다. 그러한 인물이 단지 신비한 환상이나 내면의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광기의 산물로만 해석된다면, 그가 실제로 수행한 전략적 판단과 탁월한 전술 능력, 권.. 2025. 4.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