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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2006; 악취를 감춘 프랑스, 향기로 유럽을 지배하다

by napigonae 2025. 4. 26.

 

 

프랑스 향수 이야기 하려고 향수 영화를 들먹거리기

   18세기 프랑스는 악취와 불결함이 일상적인 세계였다. 파리 거리에는 오물과 분뇨가 흘러넘쳤고, 사람들은 오랜 세월 목욕을 두려워했다. 흑사병 이후 물에 젖은 피부로 병이 퍼진다는 믿음이 퍼졌기 때문이다. 영화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는 이런 더럽고 무질서한 세상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냄새와 죽음이 얽혀 있는 그르누이(Grenouille)의 삶은 당시 프랑스 사회의 어두운 뒷모습을 압축한다. 악취에 찌든 세계에서는 향기가 곧 생존과 품위를 나누는 경계가 된다.

 

   사람들은 썩은 냄새 속에서 몸을 보호하려고 향수를 뿌렸다. 귀족과 부르주아는 가발, 옷, 장갑, 부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향기를 입혔다. 향수는 개인의 위생을 증명하는 수단이었고, 동시에 신분을 알리는 무언의 신호였다. 영화 속 인물들은 향기와 악취 사이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포장하려 한다. 좋은 향기를 지닌 사람은 사회적 환대를 받고, 냄새 없는 존재는 세상의 관심에서 밀려난다. 향은 사람을 살리고, 향이 없는 존재는 기억조차 남기지 못한다.

 

   영화 '향수'는 인간 세계가 얼마나 쉽게 감각에 지배당하는지를 집요하게 보여준다. 향수를 둘러싼 집착은 개인의 욕망을 넘어 사회 전체의 위선과 불안까지 드러낸다. 숨을 쉴 수 없는 세계에서 향기만이 인간성과 문명성을 유지하는 마지막 수단처럼 남아 있었다.

https://www.theeatculture.com/en/perfume-the-story-of-murderer-between-graphic-design-and-illustration/

조금 바꿔서 영화를 보자면..

   영화 '향수'를 둘러싼 일반적인 해석은 주로 개인 심리에 집중되어 있다. 많은 비평가들은 그르누이를 태어날 때부터 냄새가 없는 존재로 규정하고, 이를 인간 사회에서 소외되고 배제된 존재로 본다. 그르누이가 향기에 집착하는 과정을 개인적 결핍과 욕망의 증폭으로 읽으며, 살인 행각을 인간 본성의 어두운 본능이 드러난 결과로 해석한다. 이 과정에서 향수는 단순한 감각적 도구가 아니라, 타인의 사랑과 인정을 얻기 위한 절박한 수단으로 자리 잡는다. 영화를 통해 드러나는 세계는 본능이 이성을 압도하는 사회, 윤리가 감각에 무너지는 세계로 그려진다. 이러한 해석은 원작 소설이 가진 개인주의적 문제의식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영화의 연출 역시 그르누이 개인의 감각과 심리를 시각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이 해석 방식은 영화가 보여주는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배경을 제대로 살펴보지 못하게 만든다.  한 인간의 타락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악취로 가득 찬 18세기 프랑스라는 공간을 전면에 내세운다. 거리와 시장, 궁정과 시골까지 퍼져 있는 악취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부패하고 무너져 있는 상태를 상징한다. 그르누이가 태어나는 장소는 오물과 죽음이 뒤섞인 곳이며, 그의 삶은 악취를 견디고 살아남아야 하는 투쟁으로 시작된다. 사람들은 겉모습을 화려하게 치장하면서도 악취를 지우지 못하고, 향수로만 자신을 포장하려 한다. 이는 단순한 인간 본성의 문제라기보다는, 18세기 초 프랑스 사회가 몰락하고 부패해 가는 과정, 그리고 그 안에서 생존하려는 개인들의 초상을 담고 있다.

 

   이 부분을 짚어 보면 그르누이를 하나의 사회적 상징으로 읽을 수 있다. 그르누이는 개인적 고통을 넘어, 당대 프랑스가 처한 국제적, 문화적 위치를 반영한다. 흑사병, 종교 전쟁, 대항해 시대 실패로 몰락한 프랑스는 18세기 초 유럽에서 천대받는 존재로 밀려나 있었다. 주변 국가들은 프랑스를 조롱하고 경계했으며, 내부적으로도 경제와 과학, 문화의 활력이 크게 위축되었다. 영화 속 그르누이가 주변 사람들에게 착취당하고 무시당하는 모습은, 당시 세계 속에서 프랑스가 받았던 멸시와 경계를 닮아 있다. 그르누이는 결핍 속에서도 향수를 창조하는 능력을 키우고, 향기로 세계를 압도하려 한다. 이는 몰락 속에서도 문화를 재건하려는 프랑스의 몸부림을 상징한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그르누이가 만든 궁극의 향수는 주변 모든 사람들의 이성을 무너뜨리고, 군중을 무릎 꿇게 만든다. 이 장면은 감각 지배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프랑스 향수 문화가 유럽 전체를 매혹시키고 문화 중심으로 자리 잡는 과정을 상징한다고 읽을 수도 있다.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시대를 거치며 정치적, 군사적으로 불안정했던 프랑스는 문화 영역에서는 오히려 주도권을 쥐었다. 향수는 더 이상 사치품이 아니라, 교양과 문명의 상징이 되어 유럽 각지에 퍼졌다. 그르누이 개인은 사라지지만, 그가 만든 향은 남아 사람들의 삶에 스며드는 모습은, 프랑스가 역사적 격변을 거친 뒤에도 문화적 영향력을 유지했다는 사실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시선과 참여 사이에서..

   영화 '향수'를 보는 방식은 '시선'과 '참여' 사이에서 극명하게 갈릴 수 있다. 단순히 화면을 통해 불결함을 관찰하는 것과, 그 세계 안으로 들어가 절망과 몰락을 체험하는 것은 전혀 다른 깊이를 만든다. 그르누이의 살인을 개인적 광기나 변태적 욕망으로만 읽는 해석은, 18세기 초 프랑스라는 완전히 붕괴한 사회 구조를 체험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초반에 그르누이가 살해하는 대상이 하층민인 것은, 내부의 무너진 기반을 향한 절박한 반응으로 볼 수 있다. 점차 귀족의 딸을 목표로 삼는 변화는, 몰락한 프랑스가 외부 세계를 향해 다시 자리를 잡으려는 흐름과 겹친다.

 

   영화는 초반부터 악취와 오물로 뒤덮인 세상을 보여주지만, 실제 역사적 현실을 생각하면 묘사가 다소 부족하다. 18세기 초 프랑스의 몰락은 단순한 불결함이 아니라, 국가 시스템 전체가 사실상 작동하지 않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한국사를 기준으로 보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고 경신대기근까지 겹친 시기처럼,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어떤 극단적 행동도 받아들여져야 했던 절망적 환경이다. 이런 조건을 체험적 감각으로 이해하지 못하면, 영화 초반 장면은 단지 "더럽다"는 감상에 그치고 만다. 그르누이의 행동을 구조 붕괴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발악으로 받아들이고, 내부 문제와 외부 지향을 구분해서 본다면, 이 영화는 단순한 광기 서사를 넘어 몰락한 문명과 그 재구성의 기록으로 읽을 수 있다.

 

   이런 해석은 지금까지 영화 '향수'를 바라본 방식과 다를 수 있지만, 그것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인간 욕망과 감각의 지배라는 이야기로 읽어왔다. 그런 해석은 여전히 설득력이 있다. 다만 이 영화가 보여주는 시대와 사회의 붕괴를 함께 본다면, 그르누이의 행동을 조금 다른 눈으로 볼 수 있다. 개인의 광기로만 이해했던 살인도, 살아남기 위한 절박한 몸부림으로 다가올 수 있다. 영화 속 세상이 얼마나 무너져 있었는지를 체험하듯 느낄 때, 이 작품은 더 깊고 복잡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여러 가지 다른 시각이 함께 있을 때, 이 영화는 더 크고 풍부하게 이해될 수 있다.

 

시작부터 더러워? 실제로는 더 했지.

  영화 '향수'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시대가 변했다는 겉모습만 보는 것으로는 많이 부족하다. 잔다르크가 살던 15세기와 영화가 그린 18세기 초 사이에 수백 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프랑스 사회는 달라진 것이 거의 없었다. 체제는 그대로 굳어 있었고, 생활은 오히려 더 황폐해졌다. 위그노 전쟁 이후 농촌은 망가졌고, 사람들은 삶을 찾아 파리로 몰려들면서 인구의 대다수가 수도권에 몰려드는 집중화가 발생하고 있었다.

 

    그러나 도시는 인구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하수도는 끊어진 채 방치됐고, 거리에는 오물과 썩은 음식, 죽은 짐승과 인간쓰레기가 끝없이 쌓였다. 물은 썩고, 공기는 악취로 숨 막혔다. 현대인이 상상하는 '더러운 도시' 정도로는 이 세계를 설명할 수 없다. 그것은 썩어가는 육체와 부패한 숨결이 그대로 뒤섞여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곳이었다. 파리는 도시라기보다 거대한 시체와 쓰레기 더미 그 자체였다. 영화가 보여주는 거리 풍경은 이 현실을 겨우 흉내 낼뿐이다. 이 비참한 상태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나폴레옹 시대에 들어서야 파리의 하수도가 본격적으로 정비되기 시작했고, 그전까지 오물과 분뇨에 파묻힌 세계는 긴 시간 동안 사람들의 일상이었다. 영화를 보는 이가 이 역사적 절망을 체험하지 못하면, 향기가 왜 그렇게 절박하고 생존과 연결되어야 했는지를 이해하기 어렵다(Alain Corbin, 1982; Robert Darnton, 1984).

 

나의 시각과 기존의 분석

구분 기존 해석
내 해석 
주인공 그르누이  인간 본성의 어두운 측면
욕망, 결핍, 고독 상징
18세기 초 몰락한 프랑스 자체를 상징
향기의 의미 개인적 인정 욕구와 사랑에 대한 집착
프랑스 문화적 생명력과 재건의 힘
주변 인물들 사회가 약자를 배척하고 착취하는 모습
당시 유럽이 프랑스를 경멸하고 멸시하던 모습 반영
향수 제조 과정 결핍된 존재가 타인을 지배하려는 감각적 권력 창출의 수단
몰락한 프랑스가 문화적 힘으로 다시 부활하려는 과정
마지막 향수 장면 감각 지배, 윤리 붕괴 상징
프랑스 향수가 문화 중심으로 퍼지는 상징
그르누이의 죽음과 이후 개인적 비극
왕정 몰락과 나폴레옹 이후 프랑스의 정치적 소강기 반영, 그러나 향수는 문화로 살아남는다
향기의 지속성 감각적 향으로 사라진
프랑스 문화가 유럽 상류사회에 깊게 스며든 역사적 결과

 

 

향수의 발전에서 항상 나오는 세 가지

   위생에 의한 환경압력

   18세기 유럽은 위생 상태가 극히 나빴고, 프랑스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파리에서는 집안 오물과 분뇨를 거리로 쏟아버리는 일이 흔했다. 하수도는 거의 기능하지 않았고, 거리에는 악취가 가득했다. 베르사유 궁전조차 개인 화장실이 거의 없어 복도나 정원 구석에 간이 변기를 놓고 사용했다. 목욕은 병을 부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꺼려졌다. 이는 14세기 흑사병 이후 물에 젖은 피부로 해로운 기운이 침투한다고 믿은 결과였다. 사람들은 향수와 파우더로 체취를 가리는 데 의존했다. 이 시기에 하이힐도 발전했는데, 본래 패션 아이템이었던 하이힐이 분뇨와 진흙으로 뒤덮인 거리를 피하기 위한 실용적 수단으로도 각광받았다.

 

   귀족들의 자기 과시

   18세기 프랑스 귀족들은 완전히 몰락한 것은 아니지만, 이전 세기에 비해 권력과 경제력이 많이 약해진 상태였다. 왕권 강화로 지방 귀족들의 독립성이 줄었고, 사교계도 활기를 잃어 예전처럼 자유롭게 신분을 드러내기 어려워졌다. 이런 상황에서 향수는 귀족들이 자신의 위신과 품위를 지키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향수는 단순히 좋은 냄새를 내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개성과 세련됨, 경제적 여유를 보여주는 역할을 했다. 귀족들은 향수를 몸에 바르는 것은 물론이고 가발, 장갑, 부채, 옷에도 향을 입혔다. 자신이 소지한 모든 물건에서 고급스러운 향이 풍기게 하여 은근히 신분을 과시했다. 남성과 여성 모두 이런 흐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남성 귀족들도 진한 파우더와 향수를 뿌리고 가발에 향을 스며들게 하며 세련된 이미지를 만들었다. 베르사유 궁전 같은 곳에서는 향수를 쓸 때도 규범이 있었다. 너무 강한 향은 무례하다고 여겨졌고, 절제된 향을 선택하는 것이 교양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기준이 되었다 (Daniel Roche, 1989).

https://www.deepfocusreview.com/definitives/perfume-the-story-of-a-murderer/

   종교적 상징

   18세기 유럽에서는 향이 종교적 상징성과 질병 방어 수단으로 여겼다. 교회에서는 미사를 드릴 때 향을 사용해 공간을 정화하고 악령을 쫓는다고 믿었다. 사람들은 향이 몸과 마음을 맑게 하고 병을 막아준다고 생각했다. 흑사병이 퍼졌을 때 의사들은 긴 새부리 모양의 가면을 썼다. 새 주둥이 안에는 허브와 향신료를 넣어 악취와 병의 기운을 막으려 했다. 당시 사람들은 악취가 병을 일으킨다고 믿었기 때문에, 좋은 향을 맡으면 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여겼다. 향은 영혼까지 정화해 준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런 비과학적 믿음은 오랫동안 유럽 사회를 지배했다. 한편 흑사병 시기 유대인 공동체는 다른 사람들보다 피해가 적은 경우가 많았다. 율법에 따라 손 씻기와 위생 규칙을 철저히 지켰기 때문이다. 또 폐쇄적인 생활 방식이 전염을 막는 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유대인이 독을 퍼뜨렸다는 터무니없는 소문이 퍼졌고, 곳곳에서 박해를 당하는 비극이 벌어졌다. 향과 냄새를 둘러싼 이런 다양한 믿음은 향수 문화에도 깊은 흔적을 남겼다(Robert Gottfried, 1983).

https://www.nationalgeographic.fr/histoire/culture-generale-europe-pourquoi-les-medecins-de-la-peste-portaient-ils-ces-droles-de-masques

 

향수가 대유행하기까지..

   프랑스는 오랫동안 유럽에서 큰 땅과 많은 인구를 가진 강국이었다. 그러나 흑사병(14세기) 이후 인구와 농업 기반이 크게 무너졌고, 과학적 사고력도 전반적으로 후퇴했다. 합리적 사고 대신 미신과 비과학적 믿음이 퍼지면서 지적 활력이 약화되었다. 이어진 백년전쟁(1337-1453)과 위그노 전쟁(약 1562-1598)은 국가 기능을 더 심하게 약화시켰다. 대항해시대가 열렸을 때 프랑스는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에 비해 명백히 뒤처졌다. 식민지 개척과 해상 무역에서도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후추전쟁에서도 주도권을 놓쳐 체면을 구겼다. 프랑스는 유럽 무대에서 뒷방 늙은이처럼 취급받게 된다.

 

   이어진 전쟁으로 프랑스는 국가 기능의 피로감이 쌓이고 있었다.  흑사병 이후 과학적 사고력도 약해져 합리적 대응 능력마져 떨어졌다. 대항해시대가 열렸을 때 프랑스는 항해 기술과 조선업에서도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에 비해 뒤처졌다. 식민지 개척과 무역 경쟁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학문과 예술에서 새로운 세계적 아이콘을 만들어내지도 못해 유럽 문화의 정점에 서는 데 실패했다. 프랑스는 스스로를 중심이라 믿었지만, 실제로는 흐름을 주도하지 못하고 점점 뒤로 밀려나는 처지에 놓였다.

 

   그럼에도 문화의 중심에 서고자 하는 열망은 오히려 더 커졌다. 귀족들은 약해진 권위를 외형적 화려함으로 보완하려 했고, 초기 자본력을 갖춘 부르주아들은 부를 앞세워 귀족 문화를 적극 모방했다. 세련됨을 과시하려는 욕망은 신분 구분을 넘어 사회 전반으로 번져갔다. 이 흐름 속에서 향수 소비는 빠르게 확산되었다. 자본을 가진 이들은 신분에 상관없이 향수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앙시앵 레짐(Ancien Régime) 내부에 조용한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Daniel Roche, 1989).

대혁명 이후 향수의 유행

   대혁명 직후 유럽 사회는 두려움과 기대가 뒤섞인 복잡한 정서를 품게 되었고, 혁명 사상은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확산되었다. 나폴레옹은 이 분위기를 군사력과 제도 개혁으로 증폭시켰다. 그는 프랑스혁명의 정신을 무력과 행정으로 구체화하며, 대혁명 (1789-1799)이 쓸데없는 혼란이 아니라 국가 성장과 국력 강화를 이끌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는 젊고 열정적인 이미지를 얻었고, 향수를 중심으로 한 프랑스식 세련됨은 유럽 전역을 휩쓸었다. 향수와 화장품은 단순한 사치품이 아니라, 새 시대의 사고방식과 개인의 자유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받아들여졌다. 나폴레옹이 역사의 무대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프랑스식 향수 문화는 젊음, 변화, 패기의 상징으로 남았다. 결국 향수 대유행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대혁명과 나폴레옹을 거쳐 문화의 한 축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향수는 귀족 전용 사치품이 아니라 도시 상류층과 군 내부에서 일상 소비재로 자리 잡았다. 나폴레옹 군대에서는 장교와 고위 관료들 사이에 향수 사용이 일반화되었고, 깔끔한 복장과 함께 향수를 뿌리는 것이 품위의 기본 요소로 여겨졌다. 혁명 이후 성장한 부르주아 시장은 향수 수요를 폭발적으로 늘렸고, 다양한 종류의 향수들이 소형병 단위로 판매되기 시작했다. 이 흐름 속에서 향수는 프랑스 주요 수출품으로 부상했고, 향수 제조는 프랑스 산업의 핵심 부문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이탈리아 북부에서는 프랑스 점령 이후 상류층뿐 아니라 상업 계층까지 향수를 필수품처럼 사용하기 시작했다. 밀라노, 토리노 사교계에서는 향수를 사용하지 않으면 교양 없는 사람으로 간주될 정도로 문화적 기준이 정립되었다. 헝가리에서는 오스트리아를 통해 들어온 프랑스 향수가 귀족 사회의 일상 예절로 확립되었고, 연회나 사교 모임에 향수를 준비하지 않으면 무례한 것으로 여겨졌다. 러시아에서는 파리풍을 동경하는 상류층이 향수를 신분과 품격을 나타내는 기본 도구로 받아들였고,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 귀족 사회에서는 향수를 갖추는 것이 사교 생활의 기본 조건이 되었다. 향수는 더 이상 유행을 넘어 문명의 표식이 되었고, 유럽의 상류사회와 사교계에서는 향수가 없는 존재는 오히려 오랑캐처럼 여겨지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David Bell, 2001; Simon Schama, 1989).

 

문화 아이콘으로서 향수

국가 유행 초기 시기 확산 경로 향수 소비 양상 특징 요약
독일 18세기 후반 라인강 점령 지역
쾰른 중심
상류층과 상인 계층이 프랑스식 유행을 선도
오 드 콜로뉴가 독일 제품처럼 정착
영국 18세기 후반~19세기 초 런던 상류층
사교계
귀족·부르주아 중심 향수 사용
프랑스 제품에 대한 경계심+동경 병존
스페인 18세기 말 나폴레옹 이후 전짐적 마드리드 귀족과 상류층 중심 향수 사용
정치적 반감에도 문화 소비는 지속
네덜란드 18세기 말 무역로와 상업도시 상류층과 무역 부르주아 중심
향수 사용이 일상적 교양으로 자리잡음
오스트리아 18세기 후반~19세기 초 빈 사교계 중심 귀족, 상류 부르주아 필수품화
프랑스 사교 문화를 적극 모방

 

마리 앙투아네트의 향

   마리 앙투아네트는 당시 프랑스 궁정에서 유행하던 무겁고 짙은 향보다는 가볍고 자연스러운 꽃향기를 선호했다. 그녀의 전속 조향사는 이러한 취향을 반영해 여러 향수를 제작했다. '트리아농의 향수(Parfum du Trianon)'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즐겨 찾던 트리아농 정원의 분위기를 담은 것으로, 튜베로즈, 자스민, 오렌지 블로섬 같은 부드럽고 깨끗한 꽃향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여왕의 향기(Sillage de la Reine)'는 로즈, 재스민, 아이리스를 주요 향료로 삼아 은은하고 부드러운 인상을 강조했다. '오렌지 꽃수(Eau de Fleur d'Oranger)'는 신선하고 청결한 느낌을 주는 오렌지 블로섬 향기를 살린 것이 특징이다.

 

   그녀의 향수 선택은 개인 취향을 넘어 궁정 전체의 새로운 흐름을 이끌었다. 상류사회에서는 왕비의 취향이 곧 세련됨과 교양의 기준이 되었고, 이를 따르지 않는 것은 뒤처지는 것으로 여겨졌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자신이 사회 전반에 압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의식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그녀의 향수 취향은 결과적으로 새로운 소비 기준을 만들어냈고, 사교계 전반에 향수를 필수품으로 정착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렇게 개인적 선호는 하나의 문화적 시스템으로 확장되었다 (David Bell, 2001; Simon Schama, 1989).

그래서...

   영화 '향수'를 본 많은 이들은 그르누이의 개인적 서사, 즉 살인과 광기의 이야기에 집중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단순히 한 개인의 일탈을 다루지 않는다. 영화는 철저히 붕괴한 18세기 초 프랑스라는 세계를 그려낸다. 화면을 바라보는 '시선'만으로는 이 세계를 이해하기 어렵다. 썩은 도시, 무너진 질서, 생존을 향한 본능을 체험하듯 '참여'해야 비로소 그르누이의 행동과 세계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다.

 

   향수는 개인적 허영이나 욕망의 결과물이 아니다. 악취가 일상이 된 절망의 세계에서 향기는 생존을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다. 몰락한 프랑스는 위생 붕괴와 사회적 무기력을 겪었고, 사람들은 겉모습만을 치장해 버티려 했다. 이런 배경 없이 향수 문화의 확산을 설명할 수 없다. 향수는 필연이었다. 향기는 타락한 문명이 스스로를 지키려 안간힘을 쓴 흔적이며, 이후 프랑스가 문화적 중심으로 부활하는 과정의 한 축이 되었다. '향수'는 개인 서사와 함께 몰락과 생존의 기록이기도 하다.

 

 

   그르누이가 향수 제조 장면을 촬영할 때, 벤 위쇼는 실제 정통 향수 제조 기술을 배웠다. 영화 촬영 전 몇 주 동안 전문가에게 교육을 받았다. 손동작 하나까지 고증하려는 목적이었다.

 

   수천 명의 엑스트라가 등장하는 파리 시장 장면은 실제로는 750명 정도만 참여했다. 이들을 디지털 복제 기술로 반복 배치해서 수천 명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영화의 주요 촬영지는 프랑스가 아니라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이다. 바르셀로나 인근의 옛 거리가 18세기 파리로 설정되었다. 프랑스 도시들은 현대화가 심해 원작 분위기에 맞지 않았다.

 

   톰 티크베어(Tom Tykwer) 감독은 주인공 그르누이를 표현하기 위해 "냄새가 보이는 세상"을 화면으로 옮기는 방법을 연구했다. 촬영 감독 프랑크 그리베(Frank Griebe)는 색조와 필터를 수차례 테스트해 향기의 분위기를 영상으로 전달하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