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Dark Waters는 실화 기반 법정 드라마다. 거대 화학기업 듀폰(DuPont)을 상대로 한 20년에 걸친 싸움,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변호사 로버트 빌럿(Robert Bilott)의 집요함을 담고 있다. 이 영화는 왜 불편할 정도로 현실적이고, 왜 보고 나면 물 한 모금에도 의심이 생기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사라진 기업윤리
이 모든 사건의 시작은 웨스트버지니아 시골에서 농장을 운영하던 한 남자, 윌버 테넌트(Wilbur Tennant)였다. 그는 오랜 시간 키워온 소들이 원인 모를 질병과 이상 행동을 보이며 집단 폐사하는 것을 겪었고, 그 이유가 근처 듀폰 공장에서 배출된 화학 폐기물이라고 확신했다. 이미 지역 내 기관이나 전문가들은 이 문제를 외면하고 있었고, 테넌트는 마지막 수단처럼 오하이오 신시내티에 있는 변호사 로버트 빌럿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흥미로운 건, 테넌트가 빌럿의 외할머니와 같은 교회를 다녔다는 인연 하나로 연락을 취했고, 빌럿 역시 처음엔 단순한 민원 정도로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하지만 테넌트가 직접 촬영한 영상과 기록, 오염된 물, 죽은 가축들을 보여주면서 상황은 단순한 분쟁을 넘어서게 된다. 이 장면은 영화의 도입부이자, 관객에게 처음으로 "이건 그냥 오염 이야기가 아니다"라는 경고를 던지는 순간이다.
이 영화는 영웅 서사가 아니다. 주인공은 슈퍼히어로가 아니라 환경오염 전문도 아닌 일반적인 기업 변호사다. 그가 거대기업 듀폰을 처음 상대하게 된 것도 사명감 때문이 아니었다. 우연한 계기로 한 농부의 이야기를 듣고, 단순한 민원처럼 시작된 일이 전세계 수십억 인구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진실로 확장되어 간 것이다. 이 영화의 진짜 무게감은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빌럿은 미국 내에서도 유서 깊은 로펌 타프트(Taft)의 변호사로, 원래는 기업 측을 대변하던 쪽, '듀폰' 같은 회사를 지켜주는 입장이었다. 그런 그가 회사를 상대하게 되면서 겪는 충돌은 단순히 상대방과의 싸움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세계와의 싸움이다. 내부에서도 외부에서도 점점 고립되어가며, 가족과의 관계도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한발도 물러서지 않는다.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는 명분 하나로 20년에 걸쳐 자료를 모으고, 보고서를 쓰고, 법정에 선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드라마틱한’ 반전이나 클라이맥스가 없다는 점이다. 이 영화는 대부분이 보고서, 증거, 미팅, 서류, 회의, 답답한 기다림이다. 그럼에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 그만큼 현실이다. 실제로 빌럿은 수십만 페이지에 달하는 자료를 1년 넘게 혼자 분석하며 기업의 거짓을 밝혀냈다. 그 과정은 극적인 장면보다 더 극적이다.
20년간의 외로운 싸움
영화에서 다뤄진 듀폰 관련 소송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수많은 개별 소송과 집단 소송의 연속이다. 핵심은 1999년, 로버트 빌럿이 웨스트버지니아의 한 농부 윌버 테넌트(Wilbur Tennant)를 대리해 듀폰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 소송이었다. 이 사건은 듀폰이 PFOA를 포함한 폐기물을 오하이오강 유역에 불법으로 배출했다는 혐의를 다뤘고, 이후 수년간의 법정 다툼과 자료 공개를 통해 듀폰의 은폐 정황이 드러났다. 이 초기 사건은 비교적 조용히 합의로 마무리됐지만, 빌럿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듀폰이 수십 년간 PFOA의 위해성을 알고도 방치했다는 증거를 모아 7만 명 규모의 집단 소송으로 이어가게 된다. 이 과정에서 실제로 지역 주민 수천 명이 PFOA와 관련된 6가지 질병, 신장암, 고환암, 갑상선질환, 고콜레스테롤 등을 앓고 있다는 역학조사 결과도 확보되었고, 이 결과가 과학적으로도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듀폰은 2017년까지 총 6억7천만 달러의 합의금을 지급했고, 이후에도 개인 소송이 계속 제기되었다. 더 중요한 건, 이 사건 이후 미국 전역에서 PFAS 오염 관련 소송이 급증했다는 점이다. 특히 2023년에는 듀폰을 비롯한 PFAS 제조사들이 미국 50개 주와의 협상 끝에 110억 달러 규모의 수질 정화 합의에 도달했다.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니다. 현재도 여러 주에서 학교, 병원, 군부대 주변의 오염 문제로 새로운 소송이 진행 중이고, PFAS 계열 물질을 둘러싼 법적, 과학적 논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 영화는 그런 의미에서 ‘끝난 사건’을 회고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싸움의 일부다.
영원하라 PFOA
이 영화의 핵심은 화학물질 PFOA(퍼플루오로옥탄산)라는 물질이다. 이게 왜 문제냐면, 인체에 축적되고 잘 분해되지 않는다. 그래서 '포에버 케미컬(forever chemical)'이라고도 불린다. 원래 이 물질은 듀폰이 만든 '테프론(Teflon)'의 주요 성분이다. 우리가 흔히 보는 프라이팬 코팅제에 사용됐고, 방수 의류, 음식 포장지, 심지어 치실에도 쓰였다. 문제는 이 물질이 환경으로 배출됐을 때 자연에서도 거의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실제로 오하이오와 웨스트버지니아 주민들 수천 명이 이 물질로 인해 각종 질병을 앓게 되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다.
PFOA가 왜 이렇게까지 공포의 물질로 불리는지는 단순히 ‘오래 남아서’가 아니다. 이 물질은 인체에 흡수되면 혈액에 축적되고, 쉽게 배출되지 않는다. 반감기가 평균 3~8년에 이르고, 간, 신장, 갑상선 같은 주요 장기에 영향을 준다. 실제 동물 실험에서는 기형 발생, 간암, 고콜레스테롤, 면역 저하 등의 결과가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이게 특정 지역의 오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00년대 이후, 미국 CDC는 조사 대상 국민의 99% 이상 혈액에서 PFOA를 검출했고, 유럽과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왔다. 북극곰, 바다표범, 심지어 빗물에서도 이 물질이 검출됐을 정도다. 말 그대로 지구 전체에 퍼져 있다.
각국의 대응은 엇갈린다. 유럽연합은 2023년부터 PFAS 계열 물질 전체에 대해 사용 제한을 본격화하고 있고, 독일과 덴마크는 이미 식품 포장재에서 이를 금지했다. 미국은 주 단위로 규제가 다르지만, 최근 EPA가 수질기준을 대폭 강화하면서 규제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반면, 일부 국가에서는 아직도 PFOA가 포함된 제품이 생산·판매되고 있다. 생산이 중단됐다고 해도 이미 유통된 제품, 토양, 수질 등에 남아 있는 잔류물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게 바로 ‘포에버 케미컬’이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님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듀폰은 이 위험성을 이미 알고 있었다. 1980년대부터 내부 문서에 이 물질의 문제점이 언급되어 있었다. 심지어 임산부 직원이 노출된 경우 기형아 출산 가능성까지도 인지하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듀폰은 이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 오히려 쉬쉬했고, 배출을 멈추지 않았다. 이건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 구조적이고 의도적인 은폐다. 이 영화가 무거운 이유는 그 때문이다. ‘기업의 탐욕이 사람의 생명을 어떻게 무시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사례가 펼쳐진다.
실제 로버트 빌럿은 2019년에 이 사건을 바탕으로 한 책 <Exposure, 2019>를 공동 저술했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 책과 뉴욕타임스 매거진에 실린 기사 "The Lawyer Who Became DuPont's Worst Nightmare"를 토대로 제작됐다. 마크 러팔로는 이 사건에 큰 관심을 가졌고, 본인이 직접 제작에도 참여했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환경 이슈에 대한 경각심을 넓히고 싶었다고 밝혔는데, 실제로 상영 이후 미국에서는 PFAS(포에버 케미컬 계열)에 대한 법적 규제가 활발히 논의되기 시작했다. 이 영화가 다루는 화학물질 PFOA와 이를 사용해 만든 테플론(Teflon)을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테플론 자체는 고온에서 안정적인 성질을 가진 고분자 물질로, 일상에서 사용하는 것만으로는 인체에 해를 끼친다는 과학적 증거는 명확하지 않다. 영화가 조명한 것은 테플론의 ‘사용’이 아니라, 그 ‘제조 과정’에서 배출된 PFOA가 어떻게 환경과 인체에 누적되었고, 그 위험이 어떻게 은폐되었는가에 대한 문제다. 핵심은 제품이 아니라, 생산과정의 책임과 투명성이다.
그래서..
2025년 현재, 로버트 빌럿은 여전히 미국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 중인 환경 변호사 중 한 명이다. 그는 PFAS, 특히 '영원한 화학물질'로 불리는 이 유해물질의 위험성을 알리는 데 거의 집착에 가까운 헌신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도 워싱턴 대학교 세인트루이스 캠퍼스에서 PFAS 오염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 강연을 했고, 배우 마크 러팔로와 함께 다큐멘터리 <How to Poison a Planet>을 제작해 2025년 2월 뉴욕에서 첫 상영회를 가졌다. 이 작품은 전 세계적인 화학 오염 문제를 다루며 빌럿의 활동 영역을 법정을 넘어 미디어로 확장시켰다는 점에서 주목 받았다. 그는 각종 언론 기고와 인터뷰를 통해 꾸준히 문제 제기를 이어가고 있으며, 이러한 공로로 2025년에는 Best Lawyers가 선정한 ‘환경 소송 부문 올해의 변호사’로도 이름을 올렸다. 영화 Dark Waters 이후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고, 오히려 더 넓은 무대에서 더 큰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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