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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프리스트, Priest, 1994

by napigonae 2025. 4. 7.

리버풀, 구조조정의 폐허에 신부가 도착했다

   영화는 리버풀에서 시작된다. 쓸쓸한 거리, 말없이 지나치는 사람들, 응답 없는 도시. 이는 연출상의 선택이 아니라 시대적 기록이다. 1990년대 초, 리버풀은 공동체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도시였다. 대처리즘(Thatcherism)이 휩쓸고 간 자리에 남은 것은 산업의 껍데기와 실업률, 그리고 침묵뿐이었다. 이 도시에 새로 부임한 젊은 신부(그렉, Greg Pilkington)는 환영받지 않는다. 그가 이방인이어서가 아니라, 도시가 더 이상 누군가를 맞이할 여유도 이유도 잃었기 때문이다.

 

   마거릿 대처가 총리로 취임한 1979년, 영국은 노동당 정부의 장기 집권 이후 구조적 침체에 빠져 있었다. 높은 실업률과 파업, 저성장, 과잉 복지 등 이른바 ‘영국병(British disease)’이 만성화됐다는 진단 아래, 대처는 대대적인 경제 체제 전환에 착수했다. 목표는 분명했다. 국가가 아니라 시장이 중심이 되는 경제, 간섭이 아니라 경쟁이 작동하는 구조였다. 이를 위해 광범위한 민영화, 노동조합 해체, 공공복지 축소, 금융시장 개방, 지방정부 권한 박탈이 순차적으로 이뤄졌다.

 

   이 중에서도 노동조합 해체는 핵심 과제였다. 광산노조, 철도노조, 공공부문노조가 집단적으로 반발하자, 대처 내각은 잇따른 법 개정을 통해 단체 행동의 정당성을 약화시켰고, 1984년 광산 파업은 경찰력 투입으로 진압되었다. (Gamble 1988) 국가가 노동자와 전면전을 벌였고, 패배한 쪽은 조직만이 아니라 삶의 기반 전체를 잃었다. 대처의 경제정책은 통화 안정과 물가 억제를 가져왔지만, 그 대가로 산업 지역들은 파괴되었다.

 

   리버풀은 이 해체의 가장 두드러진 사례였다. 조선, 무역, 운송, 항만 노동이 중심이던 이 도시는 경제 구조 재편 과정에서 핵심 산업을 모두 잃었다. 노동시장은 붕괴했고, 공공서비스는 민영화와 감축을 거치며 기능을 잃었다. 도시 전체가 가난해졌고, 희망은 철수했다. 실업률은 20%를 넘었고, 1981년에는 토크스테스(Toxeth) 지역에서 대규모 폭동이 발생했다. 정부는 사태를 통제했지만, 회복은 없었다. 중앙정부 내부에서조차 “리버풀은 철수하는 게 낫다”는 보고가 있었을 정도다. (Waddington 1994)

 

   지방정부는 중앙의 통제를 받았고, 복지 예산은 삭감되었다. 시민들은 공공주택에서 쫓겨났고, 실업 수당은 줄어들었으며, 교육과 보건도 감축 대상이 되었다. 시장 논리에 따라 구조조정이 단행됐고, 국가 책임은 철수했다. 그 결과, 리버풀은 도시 기능을 유지하는 최소한의 기반조차 상실했다. 이곳은 1990년대 초, 그야말로 생존만이 남은 지역이었다. 범죄율은 상승했고, 마약과 절도, 빈곤은 일상이 되었다.

 

   대처는 1990년 보수당 내부의 반발로 총리직에서 물러났지만, 정책은 계승되었다. 노동당이 정권을 잡은 후에도 대처가 만든 시장 중심 경제 질서는 유지되었고, 지역 불균형은 복구되지 않았다. 2013년 그녀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을 때, 리버풀은 조용하지 않았다. 거리엔 환호가 있었고, 죽음을 애도하는 대신 지난 30년의 상처가 다시 언급되었다. 이는 증오가 아니라 기억이었다. 누구도 구조하지 않았던 도시, 버림받은 공동체의 경험은 끝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Toynbee 2013)

 

   그런 도시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모두가 각자의 생존에 몰두한 공간, 누군가에게 시선을 주는 여유가 사라진 거리. 그곳에 젊은 신부 그렉이 부임한다. 그가 외지인이라서가 아니라, 도시가 이미 인간 관계를 폐기한 구조 안에 있었기 때문에 환영은 없었다. 도시는 폐허였고, 교회조차 그 속에 숨죽인 채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니 영화의 시작이 냉소적일 수밖에 없다. 그는 그 자체로 시대의 조각이었다. 구조조정의 잔해에 도착한 인간, 그리고 반응 없는 공동체. 침묵은 그렇게 시작된다.

https://www.moviepostershop.com/priest-movie-poster-1994

리버풀 교회 공동체, 신앙이 아니라 경계의 장벽

   리버풀의 가톨릭 공동체는 단순한 종교적 연대체가 아니었다. 19세기 중반, 아일랜드 대기근(Great Famine)을 피해 대거 유입된 이민자들이 형성한 구조적 대응체계였다. 이들은 런던보다 가까운 항구도시 리버풀에 집중적으로 정착했으며, 언어, 종교, 계급 모두에서 잉글랜드 주류 사회와 거리를 두었다. 당시에는 특정 성을 가진 이들이 취업에서 배제되는 경우도 빈번했다. ‘오도넬(O'Donnell)’, ‘머피(Murphy)’, ‘피츠제럴드(Fitzgerald)’와 같은 전형적인 아일랜드계 성을 가진 이들이 직장에서 거절당하거나 임금 차별을 겪는 사례는 문서로도 남아 있다 (Belchem 2000). 이와 같은 배제 경험은 공동체 내부에서 자구책을 요구했고, 그 중심이 바로 가톨릭 교회였다.

 

   가톨릭은 단순한 신앙 체계가 아니라, 고용, 의료, 교육, 장례, 상호 돌봄을 담당하는 생활 인프라였다. 공동체는 신앙을 매개로 자신들만의 사회를 구축했으며, 그 과정에서 외부에 대한 심리적 장벽도 형성되었다. 아일랜드계 노동자들은 스코틀랜드계 혹은 잉글랜드 남부 출신 노동자들과의 긴장 관계를 겪으며, 자신들의 내부 결속을 더욱 강화했다 (Frost & North 2013). 이러한 배경 위에서 리버풀 가톨릭 공동체는 스스로를 도시의 중심에서 배제된 존재로 인식했고, 그 배제에 맞서기 위해 공동체 내부의 일관성을 극도로 중시했다.

 

   그렉은 이 구조 바깥에서 도착한 존재였다. 그는 리버풀 출신도 아니었고, 아일랜드계 정체성을 공유하지도 않았으며, 지역 교회 공동체의 기억과도 무관했다. 리버풀은 이미 대처리즘의 직격탄을 맞고 지역 공동체 자체가 수축된 상태였다. 외부인을 받아들일 여유는 없었다. 교회는 구조적으로 존재하지만, 정서적으로는 폐쇄된 상태였다. 신부는 환영받지 않았고, 무시되었으며, 철저히 이방인으로 기능했다.

 

   이 공동체에서 신앙은 구원의 언어가 아니라, 공동체 내부 식별의 언어였다. 누가 ‘우리’인가를 결정짓는 기준은 교리나 성직이 아니라, 함께한 시간과 계급적 기억이었다. 같은 미사를 드려도, 같은 옷을 입어도, 같은 직책을 맡아도, 출신과 계보가 다르면 공동체의 일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Casey 2013). 그렉은 그 한계에 부딪혔고, 설교는 공허했고, 미사 중의 말은 회피되었으며, 성직자의 권위는 신앙을 넘어 정서적으로 무효화됐다. 결국, 리버풀의 가톨릭 공동체는 종교적 공간이 아니라, 역사적 생존의 벽이었다. 공동체를 보호해온 힘이 그 자체로 장벽이 되었고, 내부의 무표정은 단지 냉담한 태도가 아니라 일종의 생존 전략이었다. 영화는 그 감정의 밀도를 과장하지 않는다. 그저 침묵하고, 응시하지 않으며, 거리를 두는 방식으로 그렉을 외곽에 위치시킨다. 환영은 없었고, 경계만이 선명했다.

고해성사의 절대성 – 종교적 비밀은 어디까지 보호받아야 하는가

   고해성사는 가톨릭 교회에서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성사로, 공식적으로는 ‘화해의 성사’라 불린다. 가톨릭 전통에서 이 성사는 신과 인간 사이의 신성한 대화로 간주되며, 그 내용은 절대적으로 비밀에 부쳐진다. 이 원칙은 중세 교회법에서 체계화되었고, 지금도 교황청이 승인한 교회법에서는 고해성사의 내용을 외부에 누설하는 사제는 자동적으로 파문된다고 명시돼 있다(Codex Iuris Canonici 983–984). 이는 단순한 윤리적 요청이 아니라 법적 구속력을 가진 내부 규율이다.

 

   이러한 절대성은 오늘날에도 유지되고 있으며, 일부 국가는 사제와 신자의 고해성사를 법적으로 보호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예컨대 미국, 캐나다, 영국에서는 '성직자–고백자 특권(clergy–penitent privilege)'이라는 이름으로 법정에서 고해성사 내용을 묻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원칙은 점점 더 압박을 받고 있다. 아동 학대, 살인, 성폭력과 같은 중범죄가 고해성사를 통해 은폐되는 경우, 고해의 비밀이 공공의 안전보다 우선할 수 있는가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호주 일부 주에서는 사제가 아동 학대 사실을 고해성사로 알게 되더라도 반드시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는 법을 통과시킨 바 있다(Black 2019).

 

   성서에서 고해성사의 절대 비밀을 명시한 구절은 없다. 자주 인용되는 구절은 요한복음 20장 23절,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여질 것이요,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는 문장이다. 하지만 이는 사제의 죄 사면 권한에 대한 언급일 뿐, 고백 내용의 비밀 유지에 대한 직접적 지시는 아니다. 결국 고해성사의 절대성은 성서보다도 중세 교회 구조와 권위 체계 속에서 발전한 제도적 장치에 가깝다(Duffy 1992).

 

   이 절대성은 근대 국가와의 관계에서도 독립적 지위를 요구해왔다. 고해성사는 세속법과 병존하지 않고, 그 위에 선다. 마치 이슬람법 샤리아(Shari’a)가 특정 지역에서 국가법을 대체하는 방식처럼, 고해성사는 개인의 범죄 사실이 담긴 경우에도 외부의 개입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제도가 작동하는 조건은 단 하나다. 공동체가 교회를 신뢰한다는 전제다. 교회가 윤리적으로 타락했을 때, 이 침묵의 절대성은 은폐의 도구로 바뀌고, 침묵은 공범이 된다. 고해성사의 침묵이 윤리적이라기보다 제도 유지의 수단으로 작동하는 경우, 그것은 신앙의 문제가 아니라 통제의 장치로 전락한다.

 

   문제는 이 구조가 내부적으로 폐쇄적이며, 외부에서 검증할 수 없는 영역에 있다는 점이다. 고백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확인할 수 없고, 사제가 침묵을 지킨 것이 신앙에 따른 것인지, 아니면 책임 회피인지 구분할 수 없다. 그 절대성은 불가침이면서도 동시에 무책임이 된다. 이와 같은 구조는 교회를 사회 속 하나의 제도라기보다, 스스로를 법 바깥의 권위로 위치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고해성사의 침묵은 종교적 신비로 보호받지만, 피해자의 생명과 안전은 그 바깥에 남는다.

잘 생겼지? 신부님이고 동성애자다.

침묵의 책임, 제도는 무죄인가, 교회는 모른 척할 수 있는가

   그렉은 는 침묵하고 있다. 고해성사를 통해 한 소녀가 겪고 있는 폭력이 명백히 드러났지만, 그는 입을 열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교회법은 고해의 내용을 누설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심지어 그것이 범죄의 고백이거나, 피해자의 고통을 방치하는 결과를 낳더라도 그렇다. 이 절대적인 원칙은 사제의 윤리라기보다 제도 자체가 요구하는 침묵이다. 그러나 질문은 여기서 시작된다. 교회가 침묵을 요구할 때, 그 침묵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고해성사의 침묵은 가톨릭 교회에서 하나의 ‘성스러운 침묵’으로 포장된다. 사제는 고백의 중재자일 뿐이며, 고백의 내용은 신과 인간 사이의 비밀로 여겨진다. 교회법은 이를 엄격하게 고정된 교리로 삼았고, 이를 어긴 사제는 파문이라는 극단적 처벌을 받는다(Codex Iuris Canonici 983–984). 하지만 이 제도는 인간의 윤리적 충동을 제어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 행위를 제한하는 틀로 작동한다. 개인의 고통은 제도 내부에서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바깥으로 밀려난다.

 

   교회는 말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성사를 보호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상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이 침묵은 공정한 중립이 아니라, 적극적인 외면과 도덕적 책임 회피의 장치다. 피해자가 고통을 호소하고 있어도, 교회는 "그건 제도 바깥의 일"이라며 자신을 면제시킨다. 이는 단순한 종교적 엄숙성이 아니라, 제도가 개인을 보호하지 않는다는 명백한 증거다.

 

   이 상황은 일종의 리트머스 테스트다. 종교 제도가 정말로 윤리적 판단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를 시험하는 기준이 되는 순간이다. 개인의 생명이 위협받고, 폭력이 반복되며, 사회적 피해가 확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제도적 침묵을 유지한다. 이때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그 침묵은 여전히 신의 뜻인가, 아니면 인간의 무책임인가?”

 

   교회의 언어는 아주 위험해진다.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지켜야 할 건 지켜야 한다"는 말은, 제도의 완결성과 자기정당화를 위한 가장 간단한 변명이다. 이 말은 결국 고통을 느끼는 쪽에 책임을 전가한다. "우리는 원칙을 지켰고, 그것이 최선이었다"고 말하는 순간, 피해자는 다시 외면당하고, 고통은 제도에 종속된다. 도덕은 남의 일이 되고, 제도는 고통을 외부화한다.

 

   실제로 교회는 반복해서 이 침묵을 선택해왔다. 미국, 아일랜드, 독일, 호주에서 드러난 아동 성폭력 은폐 사건들은 모두 고해성사의 보호 아래 진행됐다. 가해자는 고해했고, 사제는 침묵했고, 교구는 덮었다. 피해자는 교회를 떠났고, 고통은 기록되지 않았다. 이후 수많은 법정 증언과 진상조사에서 드러난 건 교회의 침묵이 아니라, 침묵을 정당화하는 교회의 확신이었다(Doyle et al. 2006). 신앙의 이름으로, 피해는 구조화되었고, 침묵은 제도화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에피쿠로스의 고전적 물음(Epicurean Paradox)  “신이 선하고 전능하다면 왜 악을 허락하는가?” 는 방향을 틀어야 한다. 우리는 신에게 책임을 묻는 대신, 신의 이름을 대행한다는 제도와 구조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신은 침묵한 것이 아니라, 신을 대변한다고 나선 교회가 구조적 침묵을 선택한 것이다. 다시 말해, 칼이 사람을 찔렀다고 칼을 없애는 건 본질을 피하는 일이다. 문제는 칼이 아니라, 그 칼을 들고서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 구조다.

 

   고해성사는 본래 개인의 회개와 용서를 위한 성사였지만, 제도에 종속되면서 침묵의 권력이 되어버렸다. 침묵은 신비가 아니라, 위험한 회피의 언어가 되었고, 그 결과 교회는 무고한 피해를 낳는 사건의 공범으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자신은 죄가 없다고 말한다. 이 침묵이 끝나지 않는 한, 교회는 더 이상 윤리적 공동체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도덕적 감각을 마비시키는 가장 오래된 조직일 수 있다.

신은 무엇을 하는가?

   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 고통받는 이의 외침에 침묵하고, 절망의 시간을 방치하고, 아무 응답도 없이 등을 돌렸을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성찬을 받기 위해 앞으로 걸어오는 소녀, 그리고 그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젊은 신부 그렉.  이 장면은 단지 감정의 교류가 아니다. 이는 신의 침묵이 아니라 신이 이미 응답했으나, 인간이 그것을 막았던 순간을 되짚는 장면이다.

 

   에피쿠로스는 묻는다. 신이 선하다면 왜 악을 허락하는가? 신이 전능하다면 왜 악을 막지 않는가? 이 질문은 신의 존재 자체를 회의하게 만들지만, 정작 그 고통의 현실 안을 들여다보면 신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신을 대리하겠다고 나선 교회, 그리고 그 교회를 제도화한 인간의 구조다. 신이 고통에 침묵한 것이 아니라, 그 고통에 응답하는 과정을 제도가 가로막은 것이다. 신에게 되묻는 순간, 되묻는 이는 실은 제도의 벽 앞에 서 있었던 셈이다.

 

   이 구조는 비유로 말하면 이렇다. 홍수 속에 빠진 사람이 구조 요청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밧줄을 던지고, 통나무를 띄우고, 헬기를 보내도 그가 말한다. “괜찮습니다. 신이 직접 구해주실 겁니다.” 결국 그 사람은 구조되지 못한 채 죽는다. 죽은 뒤 신을 만난 그는 묻는다. “왜 절 구하지 않으셨습니까?” 신은 답한다. “내가 밧줄도 보냈고, 통나무도 띄웠고, 헬기도 보냈다. 당신이 거절한 것이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고해성사의 구조는 이와 비슷하다. 신의 응답은 있었다. 다만, 교회와 제도가 그것을 가로막았을 뿐이다.

 

   고해성사는 고백자의 죄를 신과의 관계 안에서 회개하는 방식으로 설정된 성사다. 교회법은 그 내용을 사제가 절대적으로 비밀로 해야 한다고 명시한다(Codex Iuris Canonici 983–984). 하지만 이 절대성은 피해를 방치하는 구조로 작동할 수 있다. 특히 성폭력, 조직적 범죄, 대량 살상 계획 같은 심각한 문제를 사제가 들었음에도 아무 행동을 하지 못한다면, 고해성사는 침묵의 무기가 되고 만다. 이 구조는 도덕적 중립이 아니라 무력화된 윤리 체계의 전형이다(Frawley-O’Dea 2007).

 

   결국 이 체계는 종교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다른 이의 생명권과 인권을 침해하는 구조로 확장될 가능성을 내포한다. 교회는 고해의 비밀을 지키며 자신들의 제도를 수호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사회 전체에 해악을 끼치는 경우에도 그 입장을 고수한다면, 이는 사회 질서에 대한 잠재적 위협이 된다(Black 2019). 고해성사가 없었다면, 구조가 가능했을지도 모를 피해자들은 실제로 존재한다. 그때 교회는 무엇을 했는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무능이 아니라 교회와 제도와 인간의 선택이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신의 책임이 아니라, 종교 제도의 책임을 묻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신은 성경 속에서도, 인간의 역사 속에서도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신의 이름으로 구조를 조직한 자들이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토마스 도일(Doyle, 2006)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가톨릭 교회는 수십 년간 아동 성폭력 고해를 들은 뒤 침묵했으며, 이 침묵은 신앙이 아니라 통제와 은폐를 위한 전략으로 조직적으로 기능했다.

 

   종교의 자유가 존중받아야 한다는 원칙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을 때에만 정당하다. 로버트 아우디(Robert Audi, 2000)는 종교가 공적 영역에 들어올 때, 세속 윤리와 충돌하지 않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고해성사가 윤리를 벗어나고 법의 감시에서 벗어난다면, 그것은 도덕이 아니라 도피다. 그리고 그 침묵은 신을 향한 경외가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눈감는 회피에 불과하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말한다. 신은 말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 말을 제도가 듣지 않았다는 것이다. 신이 소녀를 통해 손을 내밀었고, 그렉 그 손을 받아들이며 무너졌다. 그 순간, 신은 응답했다. 말이 아니라 눈물로, 기적이 아니라 관계로. 그러니 “신은 어디 있었는가?”라는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누가 신의 응답을 막았는가?” 그리고 대답은 분명하다. 그것은 교회였고, 제도였고, 침묵을 권위로 착각한 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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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선택은 인간이 했고, 책임은 신에게 전가되었다

   소녀가 폭력을 당했다. 젊은 신부 그렉은 그 사실을 알게 되었고, 괴로워했다. 분노했고, 침묵했고, 무너졌다.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고해성사의 구조가 그의 입을 막았고, 교회는 침묵을 권위로 둔갑시켰다. 그리고 사람들은 물었다. “신은 어디 있었는가?” 이 질문은 익숙하지만, 구조적으로 왜곡되어 있다. 모든 선택은 인간이 했고, 모든 책임은 신에게 전가됐다. 영화는 바로 이 지점에서 비겁한 책임 회피의 구조를 드러낸다.

 

   1990년대 초반의 리버풀은 냉소적이고 무기력한 공간이었다. 대처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산업도시를 해체했고, 그 잔해 위에서 공동체는 기능을 상실했다(Gamble 1988). 성직자는 외지인이라는 이유로 소외되었고, 소녀의 고통은 제도와 관습 속에서 침묵으로 포장되었다. 이 모든 현실은 누가 만든 것인가? 신이 아니라, 정치가, 제도가, 사회가, 인간이 만든 결과다.

 

   사건의 모든 결정점에는 사람이 있었다. 올드한 신부(매튜, Matthew Thomas)는 육체적 관계를 선택했고, 그렉은 침묵과 저항 사이에서 고뇌했다. 교회는 침묵을 택했고, 공동체는 무관심을 선택했다. 성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지만, 그렉은 원수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다. “일흔 번씩 일곱 번을 용서하라”고 말했지만, 신부는 단 한 번도 용서받지 못했다. 이는 성서의 실패가 아니라, 성서를 따르지 않은 인간의 선택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신을 원망한다. 이 구조는 철학적으로 오래된 질문을 반복한다. 에피쿠로스는 “신이 전능하다면 왜 악을 막지 않는가?”라고 물었고, 현대인들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이 질문은 질문의 대상을 잘못 설정한 것이다. 사르트르는 인간은 스스로를 선택하는 존재이며, 그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한다(Sartre 1946). 아렌트는 악은 거대한 의도가 아니라, 일상적인 무책임에서 비롯된다고 했다(Arendt 1963). 결국 문제는 신이 아니라, 신의 자리를 빙자해 판단을 유예하고 행동을 중단한 인간의 구조적 무책임이다.

 

   이 상황은 신이 아닌 인간의 리트머스 테스트다. 침묵이 아니라 응답이 있었고, 그 응답은 교회와 제도에 의해 가로막혔다. 그럼에도 신을 탓하는 건, 마치 총을 손에 쥔 자가 “신이 쏘라고 하셨습니까?”라고 되묻는 것과 같다. 니부어는 인간은 도덕적일 수 있지만, 제도 안에서 집단은 쉽게 책임을 분산한다고 했다(Niebuhr 1932). 제도는 책임을 묻지 않고, 신은 침묵한 것으로 몰리며, 인간은 그 책임을 감춘다.

 

   이런 맥락에서 고해성사라는 제도 역시 다시 검토되어야 한다. 그것이 개인의 회개와 정화를 위한 성사라는 본래 목적을 벗어나, 공공의 위험을 은폐하는 구조적 침묵으로 작동할 경우, 그것은 더 이상 종교적 자유가 아니라 도덕적 회피다. 아우디는 종교적 자유는 세속 윤리와 충돌하지 않을 때에만 정당하다고 말한다(Audi 2000). 그런데 고해성사는 윤리를 넘어선 권위가 되어, 피해자의 고통을 구조적으로 연기시킨다.

 

   따라서 “신은 무엇을 했는가?”라는 질문은 성립되지 않는다. 신은 이미 행동했으며, 인간이 그 행동을 가로막았다. 구조는 인간이 만들었고, 제도는 인간이 유지했다. 침묵은 신이 아니라 교회가 택했고, 외면은 신이 아니라 공동체가 선택했다. 그러니 문제는 신이 무엇을 하지 않았느냐가 아니라, 인간이 무엇을 하지 않았느냐이다. 영화가 끝났을 때 남는 건 신의 무능이 아니라, 인간의 자기 회피다.

https://www.jestersreviews.com/reviews/1527

무너졌기에,  우리는 스스로 극복한다

   성찬의 마지막 장면에서 소녀는 홀로 앞으로 나아간다. 누구도 그녀를 부르지 않았고, 누구도 그녀와 함께하지 않았다. 공동체는 침묵했고, 매튜 신부는 의식을 그대로 이어갔다. 줄은 그에게로 향했고, 구조는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젊은 신부 그렉은 소녀 앞에서 무너진다. 말없이, 그러나 전심으로 무너진다. 이는 감정의 해체가 아니라, 감정이 응답한 순간이다. 소녀는 그렉의 고뇌를 알지 못하고, 그렉은 소녀의 고통을 체감하지 못한다.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그 이해 불가능성 자체를 공유한다.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서로의 고통을 정확히 알 수 없어도, 그 깊이를 외면하지 않듯이. 그것은 고통을 통한 순수한 감각이며, 말이 아닌 마음으로 닿은 심연이다.

 

   이 장면은 교회와 공동체의 침묵을 가로지른다. 그렉은 신부로서의 지위를 내려놓고 인간으로 존재한다. 소녀는 피해자로서의 침묵에서 벗어나, 응답하는 존재로 걸어간다. 이들은 서로에게 죄를 짓지 않았지만 용서하며,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경험한다. 이는 제도가 명령한 침묵이 아니라, 인간이 선택한 반응이다. 이 반응은 고통에 대한 단순한 공감이 아니라, 회복을 향한 명확한 의지다. 레비나스(Levinas 1969)가 말한 타자의 얼굴, 말로 환원할 수 없는 고통과 그것을 감당하려는 책임의 응답. 그렉과 소녀는 그 얼굴을 서로에게서 보았다. 그리고 침묵하지 않았다. 성찬의 순간, 그들은 단순히 무너진 것이 아니라, 다시 일어서기로 결심했다.

 

   교회는 여전히 무표정하다. 매튜는 흔들리지 않고, 신자들은 앞줄에 서 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다른 길을 택했다. 외면받았지만 외면하지 않기로 했고, 고통받았지만 고통을 감추지 않기로 했다. 무너졌기에 서로에게 기댔고, 울었기에 인간으로 남았다. 이 장면은 더 이상 ‘견딘다’는 말로 설명되지 않는다. 이는 ‘이겨내겠다’는 선택이고, ‘함께 극복하겠다’는 약속이다. 프롤리 오디아(Frawley-O'Dea 2007)는 치유는 구조가 아니라 감정의 진실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이 장면은 그 진실의 결정적 표명이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소녀는 앞으로 걸어갔고, 그렉은 성찬을 집도하며 무너져내린다. 무너짐은 약함이 아니라, 다시 일어설 공간의 탄생이다.

 

   이 장면은 방치된 결말이 아니다. 누구도 구조해주지 않았지만, 그들은 서로를 일으켜 세운다. "You raise me up", 이 장면에 어울리는 감정의 코드다. 여기서 말하는 ‘you’는 신도, 제도도 아니다. 성찬의 순간, 서로를 마주하고 선 두 사람, 바로 그렉과 소녀다. 그들은 서로를 응시하고, 기댈 수 없던 세계 속에서 서로를 기대어 선다. 신의 응답은 이미 존재했다. 그러나 제도와 교회가 그것을 가로막았다. 그래서 응답은 인간의 관계 속에서, 감정의 교감 속에서 새롭게 구현되었다. 교회는 침묵했지만, 감정은 말을 걸었고, 제도는 외면했지만, 인간은 서로를 응시했다. 공동체는 이들을 외곽에 몰아냈지만, 그렉과 소녀는 그 가장자리에 서서 서로를 붙잡았다. 이 결말은 선언한다. 인간성은 위로부터 내려오는 구조에 의해 회복되지 않는다. 그것은 고통 속에서도 외면하지 않은 이들이 서로에게 내민 눈빛과 무너짐, 그리고 다시 일어섬을 통해 되찾는 것이다. 바로 지금, 이 장면에서, 그 결단이 시작되는 것이다.

 

* 올드한 신부 매튜는 해방신학자인데.. 해방신학은.. 외면하겠다.

 

   이 영화는 개봉 당시 가톨릭 교회와 직접적인 충돌을 일으켰다. 아일랜드 가톨릭 교회는 상영 금지를 요청했으나, 아일랜드 영화 검열 위원회는 이를 거부하고 부활절 주말에 상영을 강행했다(dekkoo.blog 2018). 이 결정은 종교와 국가 기관 간의 공개적인 긴장 사례로 남았다. 미국에서는 보수 가톨릭 단체들이 영화의 전국 개봉에 반대했고, 배급사인 미라맥스와 모회사인 월트 디즈니에 대한 불매 운동이 벌어졌다. 일부 지역에서는 실제로 폭탄 협박이 접수되어 영화의 상영이 지연되거나 취소되기도 했다 (Wikipedia 2024).
   영화에서 학대 피해 소녀 리사 언스워스를 연기한 배우는 크리스틴 트레마르코(Christine Tremarco)이다. 그는 이후에도 꾸준히 연기 활동을 이어갔으며, BBC 드라마 'Waterloo Road', 'Casualty', 'Moving On' 등 다수의 TV 시리즈에서 주조연을 맡았다. 『프리스트』 이후에도 그는 정극 중심의 배우로서 활동을 지속하며, 영국 대중문화 안에서 꾸준한 입지를 확보했다 (IMDb 2024).
   영화는 1994년 토론토 국제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하며 첫 주목을 받았다. 이후 미국에서 제한적으로 개봉되었으며, 첫 주말 기준 8개 스크린에서 약 11만 달러의 수익을 기록했고, 북미 전체 수익은 약 420만 달러였다 (Wikipedia 2024). 비평가들의 평가는 엇갈렸다. 로저 이버트(Roger Ebert)는 이 영화에 별 한 개만을 부여하며, “교회의 도덕성 비판이 일방적이고 얄팍하다”고 지적했고 (Ebert 1995), 반면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피터 스택(Peter Stack)은 “신앙과 도덕의 긴장을 다룬 강력한 드라마”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