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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다르크, 1999; 신의 무기로 써먹고, 마녀로 태워죽인 교회

napigonae 2025. 4. 14. 23:19

영화를 빌미로 잔다르크 들먹이기

   뤽 베송(Luc Besson)의 1999년 영화 '잔다르크(The Messenger: The Story of Joan of Arc)'는 잔 다르크라는 실존 인물을 고통스러운 환영과 신비주의적 환상 속에 배치하며 이야기를 짜내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학대와 충격을 경험한 한 소녀가 초자연적 목소리를 듣고, 그것을 통해 전장의 영웅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구조는 인물의 핵심을 모호하게 만든다. 잔다르크는 역사적 인물이며, 프랑스를 구원한 지휘관이자 왕권의 정당성을 대중 앞에서 승인한 정치적 인물이었다. 그러한 인물이 단지 신비한 환상이나 내면의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광기의 산물로만 해석된다면, 그가 실제로 수행한 전략적 판단과 탁월한 전술 능력, 권력 구조 속에서의 위치 인식은 설명되지 않는다.

 

   여기에서 영화적 상상력에 기반한 초자연적 해석 대신, 잔다르크를 신체적 예외성, 천재 전략가, 정치 언어의 활용, 그리고 교회의 권위와 신과의 우선 순위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는 점, 네 가지 축을 통해 접근하고자 한다. 그녀는 단순한 신의 메신저가 아니라, 뛰어난 지성과 감각, 극한 상황에서의 육체적 역량, 그리고 권력 언어에 대한 정교한 통제 능력을 모두 갖춘 예외적 인물이었다. 지금부터 살펴볼 네 가지 주제는 잔다르크를 신화나 종교의 틀에서가 아니라, 기록과 맥락 속에서 재구성하려는 시도로 구성될 것이다. 영화 속 잔다르크가 아니라 실제 잔다르크에 접근해보고자 한다.

난 전달자일 뿐. https://play.google.com/store/movies/details?id=sa5ZvvraTw0&pli=1

 

철인인가? 예외적 특성일까?

   잔다르크는 단순한 신의 도구가 아니라, 인간 생리의 극한 조건을 현실에서 입증한 실존적 예외값이었다. 17세의 나이에 전장에 투입된 그녀는 단순히 신비주의적 존재가 아니었다. 반복적으로 전투에 참여하며 중상을 입고도 빠르게 회복하여 전선으로 복귀했다는 다수의 기록은, 인간 신체가 가진 예외적 작동 가능성에 주목하게 한다. 《Chronique de Jean Chartier》는 오를레앙 공방전(Siege of Orléans, 1428-1429) 당시, 그녀가 목에 화살을 맞고 스스로 그것을 뽑은 뒤, 짧은 기도를 마치고 즉시 전투에 복귀했다고 전한다. 《Journal du siège d’Orléans》에는 그녀가 성벽 돌격 도중 투석기에 맞아 낙상했으나 중상을 입지 않고 이튿날 작전에 참여했다는 기록이 확인된다. 또한 《Procès de condamnation de Jeanne d’Arc》의 증언에 따르면, 파리 공략전에서 잔다르크는 다리에 석궁 화살을 맞고도 병사들에게 복귀 명령을 내리고, 며칠 후 다시 작전에 복귀했다고 진술된다. 근대적 의료 체계가 없던 시기에, 감염이나 출혈, 관통상으로 인한 쇼크 없이 이처럼 신속한 회복과 반복 투입이 가능했던 사례는 매우 이례적이다. 이 반복된 고강도 전투 속에서 그녀의 신체는 단순히 '정신력'으로 설명되지 않는 생리학적 작동을 암시한다.

https://rogersmovienation.com/2022/12/27/classic-film-review-the-fine-madness-that-was-the-messenger-the-story-of-joan-of-arc1999/

 

   극한 상황에서 인간은 평상시의 생리적 억제 메커니즘을 해제한 채 근력을 동원할 수 있다. 이 현상은 ‘히스테리성 근력(hysterical strength)’이라 불리며, 생명의 위협을 감지한 뇌가 평소 억제하던 근섬유까지 풀어내면서 일시적 폭발력을 가능하게 한다. 평상시 인간은 대략 60~70% 수준의 근육만을 동원하지만, 교감신경계가 비상작동 상태에 돌입하면 잔여 30%의 근섬유까지 활성화된다. 이는 아드레날린, 노르에피네프린, 코르티솔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의 폭발적 분비와 연동되어 진행되며, 평소보다 강한 힘, 빠른 반응, 고통에 대한 둔감화 반응을 유도한다 (Sapolsky 2004; Krakauer et al. 2007).

 

   회복 속도 역시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잔다르크가 반복적 부상에도 불구하고 회복 기간 없이 재투입되었다는 것은, 외상 반응과 조직 재생 단계에서의 면역계 조절 능력이 평균보다 높았음을 의미할 수 있다. 외상 후 손상 조직에는 염증성 사이토카인이 대량 분비되며, 이와 동시에 위성세포(satellite cells)가 활성화된다. 위성세포는 손상된 근섬유 주변에서 증식해 새로운 근육조직을 형성하고, 줄기세포 기반의 복구 메커니즘을 통해 상처 회복을 가속화한다. 이 과정에서 성장호르몬(GH)과 인슐린유사성장인자(IGF-1)의 분비가 중요한데, 이는 염증 반응을 억제하고 조직 재건을 촉진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Tidball 2005; Montarras et al. 2005). 일부 유전적 구성은 이러한 회복 반응에 빠르게 반응하며, 조직 재생에 필요한 에너지 대사를 효율적으로 조율한다.

 

   또한 근육 수축에 관여하는 ACTN3 유전자의 발현도 주목할 만하다. ACTN3의 R 대립유전자는 빠른 수축섬유(fast-twitch fibers)의 기능을 강화시켜 짧은 시간 내 고강도 운동을 반복할 수 있게 하며, 회복 속도와 반응 속도 또한 이에 영향을 받는다 (Yang et al. 2003; MacArthur & North 2007). 잔다르크는 갑옷을 입고 수일간 말을 타며 이동하고, 날이 밝기도 전부터 전투에 참여하는 생활을 반복했다. 그러한 고강도 신체 활동을 지속하면서 체력 저하나 만성 외상 후유증이 기록되지 않았다는 점은, 그녀가 단순히 전장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비정상적으로 효율적인 신체 회복과 대응 메커니즘을 탑재한 인물이었음을 시사한다.

 

   물론 이 모든 생리학적 가능성은, 그녀의 확고한 신념 체계와 맞물릴 때 더욱 현실적인 설명이 된다. 잔다르크는 심문 중 “하느님의 뜻이라면, 다시 싸우겠습니다”라고 반복하며, 육체적 고통을 사명으로 덮는 언어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종교적 확신은 그녀에게 고통을 감내할 이유를 제공했을 뿐 아니라, 신체적 반응을 억제하거나 지연시키는 심리적 안정 장치로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심리적 목적성, 초월적 신념은 통증 인식과 피로감 인지에도 영향을 주며, 이는 뇌의 전측 대상피질(anterior cingulate cortex)과 편도체 활동을 통해 입증된 바 있다 (Wiech & Tracey 2009).

 

   잔다르크는 초인적 체력과 회복력을 타고난 인간이었을 수도 있고, 그 조건을 갖춘 채 신념과 사명을 겹쳐진 존재였을 수도 있다. 그녀가 반복된 부상에도 복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한 역사적 수사나 신화적 찬사가 아니라, 이례적으로 정교하게 작동한 인간 생리와 정신의 결합 반응이었다.

 

나폴레옹, 제갈량 나오라고 그래

   잔다르크는 글을 간신히 읽을 줄 아는 농민 소녀였고, 정규 군사 교육은커녕 가정 교사도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전장에 등장한 순간부터, 프랑스군의 향방을 바꾸기 시작했다. 신의 음성을 들었다는 메시지만으로 군을 움직였다고 하기엔, 그녀가 세운 승전 기록과 통솔력은 지나치게 구체적이었다. 그녀는 전술적 판단과 순간적 통찰력, 그리고 상징의 힘을 동시에 운용한 실전 두뇌, 근육형 지휘관이었다.

 

   샤를 7세(Charles Ⅶ)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변장을 하고 다른 사람들 속에 섞여 있었다. 그러나 잔다르크는 군중 속에서 단번에 왕세자를 식별했다. 이는 단순한 계시의 결과로만 설명되기 어렵다. 정치적 불안정 속에 흔들리는 샤를의 계승권 문제를 그녀는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고, 그 민감한 지점을 공개적으로 드러냄으로 본인의 입지를 증명했다. 신학적 문제들과 검증을 통하여 잔다르크에 대한 신실함을 측정하려 했다. 그 질답을 통하여 잔다르크의 목적이 프랑스 해방과 샤를 7세의 왕위 계승이었음을 확실히 주장했다. 신학자들이 신학적 검증을 하여 혹여나 문제를 제기할 수 있었겠지만 이 경우 흔들리는 샤를 7세의 왕위 계승 문제까지도 부정하게 되는 상황이 연출 될 수 있었다. 즉 잔다르크의 최종 목표가 프랑스 해방, 샤를 7세 옹립인데 신앙의 신실함을 검증하면서 그녀의 목표를 부정하면 전체가 위태로워지는 상황, 잔다르크의  판단력은 일종의 전략적 언어 설계였다. 잔다르크를 “중세 전쟁사의 예외적인 실전 지휘관”으로 평가한 학자는 그녀가 단지 상징으로 머물지 않고 작전 회의에 직접 개입했다고 본다. 깃발을 앞세워 병사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사기가 떨어진 곳에 직접 돌격해 전선을 재구성하는 장면들은 단순한 믿음이 아닌 유기적인 전장 감각을 보여주는 예다. 그녀의 작전 배치와 타이밍 결정은 당시 전문 지휘관들과 맞먹거나 능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DeVries. 2003).

 

   잔다르크의 전투 개입 양상에 주목한 연구는, 그녀가 전술을 실행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군의 감정선을 실시간으로 읽고 그것을 전술적 자산으로 전환한 인물로 보고 있다. 특히 오를레앙 전투에서 성벽을 향해 집결하는 보병과 궁수들을 직접 정렬시키고, 돌격 타이밍을 육성으로 지시한 사례는 매우 드문 기록이다. 상급 장군들이 그녀의 지휘를 전폭 수용한 배경에는 실질적 전투 능력에 대한 인정이 있었다 (Curry. 2005). 잔다르크가 보여준 리더십의 근거는 ‘복합적 정보 처리 지능’이었다. 단순한 명령 수행자가 아니라, 상징적 도구, 정치적 설득자, 전략 조정자, 전술 실행자 역할을 동시에 수행했다는 것이다. 그녀의 깃발 사용, 복장 선택, 말투와 행동은 단순한 소통이 아닌 통제 기호로 기능했고, 이는 “신의 뜻을 인간 정치에 최적화하여 활용한 전장의 배우이자 연출가”라는 평가로 이어진다 (Taylor. 2009). 잔다르크는 전통적인 여성 프레임을 깨뜨린 인물이기도 하다. 군을 움직이고, 권력을 조직하고, 언어로 정치와 신념을 융합시킨 방식은 초월적 메시지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그녀는 “이중 언어를 구사”했으며, 신학자들 앞에서는 교리에 위배되지 않는 문장을 만들어내고, 군 앞에서는 전술적 명령으로 번역하는 능력을 가졌다 (Barstow. 1994).

 

   잔다르크는 즉각적인 상황 판단, 정보의 전략적 활용, 타이밍 감각, 신념의 설득력, 상징 조작 능력을 겸비한 종합형 전술가였다. 이것은 맹신이나 광신이 아니라, 이성과 감각이 결합된 천재성의 작동이었다. 교육이 부족했다는 사실은 단지 배경일 뿐, 그녀가 보여준 것은 군대를 움직이고, 권위를 확보하며, 판단을 반복하는 ‘전장 위의 고지능’ 그 자체였다.

너무 당당하잖아. https://www.imdb.com/title/tt0151137/characters/nm0000518

 

잔다르크의 전략 감각

   잔다르크는 한 차례의 말재간이나 강한 확신으로 임시적 신뢰를 얻은 인물이 아니다. 그녀는 전장과 권력의 언어를 직감했고, 그것을 행동으로 전환하는 데 능숙했다. 전투와 진군, 정치적 상징과 군사적 기동을 분리하지 않고 사고했던 인물이었다. 이는 몇 차례의 작전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오를레앙 공방전은 그녀의 전략 감각이 지휘 수준에서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 사례다. 프랑스군은 장기간 고립 상태였고, 사기는 바닥을 쳤다. 잔다르크는 수세 국면을 전환해야 한다고 판단했고, 단순히 명령이 아니라 직접 돌격을 주도하면서 전선을 전환시켰다. 투렐 요새(les Tourelles)를 공격할 때 가장 먼저 부상을 입은 것도 그녀였고, 그 모습은 곧 군 전체를 진격시키는 신호가 되었다. 이는 “상징을 전술로 만든 극단적 효율성”이라 정의된다 (DeVries 2003). 전략은 설계 이전에 설득이며, 그녀는 행동으로 설득을 완수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벌어진 파테이 전투(Battle of Patay, 1429)에서는 완전히 다른 유형의 전략적 감각이 드러난다. 적의 병력 이동 경로를 선제적으로 탐지하고, 이를 우회 기습으로 연결한 판단은 정보의 수집과 해석, 그리고 타이밍 결정이라는 세 단계를 동시에 아우른다. “전통적인 정면대결을 회피하고, 신속한 기동으로 적의 약점을 찌른 작전은 프랑스 전장에서 낯선 패턴이었다”고 분석된다 (Curry 2005). 이 판단은 단순한 계시가 아니라, 환경을 읽고 선택지를 좁히는 과정의 산물이었다.

 

   쟈르조 전투(Battle of Jargeau, 1429)는 그녀의 지형 감각과 공간 전술을 드러낸다. 루아르 강(Loire River)이라는 장벽을 활용해 적의 수비망을 교란하고, 셰시를 통해 기습을 단행한 전술은 정규 전력 운용자도 주저할 만한 결정이었다. “공간을 통해 전술을 조형하고, 전투 이전에 구조를 설계한 예외적 사례”라는 분석이 있다 (Taylor 2009). 잔다르크는 방향을 잡는 데 머물지 않았다. 그녀는 방향을 미리 정하고, 그것이 유일한 선택지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이러한 작전들의 집약적 완성은 랭스 대관식(Coronation at Reims, 1429)이다. 샤를 7세를 정치적으로 복권시키는 데 있어, 왕의 존재는 의심되고 있었고, 왕위 계승권 자체가 약해 빠진 권위에 기대고 있었다. 잔다르크는 이를 정확히 인식하고, 전쟁이 아닌 상징으로써의 전술을 구성한다. 랭스로의 진군은 단지 지리적 이동이 아니라, 정치적 심리전을 내포하고 있었다. “랭스는 누구의 영토도 아닌 중립지대였지만, 그녀는 거기를 상징의 수도로 만들었다”고 분석된다 (Castor 2015). 프랑스는 대관을 거행했고, 잉글랜드와 부르고뉴는 그 사실을 막지 못했다. 정치의 시간 감각이 전장을 넘어선 지점에서, 그녀는 스스로의 예측력을 증명했다.

 

   “그녀의 군사 전략은 승리보다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방식에 가깝다. 작전은 시작을 의미했고, 상징은 구조를 결정했으며, 결정은 예상보다 먼저 나왔다”는 평가는 이 전략의 핵심을 요약한다 (Allmand 1988). 이 말은 잔다르크의 전략이 단지 전투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구조를 재편하고 분위기를 선도하며, 권력을 재정의하는 것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녀는 적을 파악하는 것만큼, 아군이 무엇을 믿고 있는지를 이해했고, 그 믿음을 조직적 실행으로 바꿀 줄 알았다.

 

정치적 언어로 무장한 예언자

   잔다르크는 전장의 사령탑이었다. 전선을 이동시키고, 심리를 끌어당기며, 상징을 전술화하고, 지리적 구조를 심리적 효과로 전환했다. 그녀는 명령을 받은 자가 아니라, 명령을 불러일으킨 자였고, 작전의 일부가 아니라 전체를 설정한 인물이었다. 주어진 틀을 따르는 자가 아니라, 틀을 미리 설계한 사람이었다. 잔다르크가 신의 음성을 들었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건, 그녀가 ‘어떻게 움직였는가’이다.

 

   잔다르크는 교회 심문을 통과한 신비주의자가 아니라, 언어를 무기로 정치적 지형을 구축한 전략가였다. 이미 위에도 언급했지만 그녀가 샤를 7세를 ‘신의 뜻이 정한 왕’이라 못 박은 순간, 자신의 계시를 의심하는 자는 곧 왕의 정통성을 부정하게 되는 구조가 형성되었다. 이는 무오류한 교리를 바탕으로 한 종교적 권위가 아니라, 체제 내부의 논리 모순을 역이용한 발언이었다. “신성성을 의심할 수 없게 만든 언어적 고안”이라는 평가가 이를 뒷받침한다 (Castor 2015). 심문을 맡았던 신학자들은 그녀의 계시에 대한 신학적 오류를 지적할 수 있었지만, 동시에 왕의 정통성을 훼손할 수는 없었다. 이 상황은 “교회의 입장이 이미 봉쇄된 정치적 기획”이었다 (Taylor 2009). 잔다르크는 질문마다 신과 왕을 일치시키는 답변을 내놓았고, 반박은 곧 체제를 흔드는 정치적 실책이 되었다. 그녀는 스스로를 면책 불가능한 프레임 속에 배치한 것이다. 이는 “왕권에 편입된 신성성의 정치화”로 볼 수 있으며, 그녀는 단순한 계시 전달자가 아니라, “반박 가능성을 계산한 언어 설계자”였다 (Taylor 2006). 이처럼 잔다르크는 단지 말을 믿게 한 것이 아니라, 말이 틀릴 수 없도록 현실과 정통성을 선결 조건으로 만든 정치적 언어의 천재였다. 이는 랭스 대관식으로 실증되며, 그녀가 예언한 정통성이 실현됨으로써, 잔다르크는 그 어떤 교리보다 더 실제적이 된 계시가 되었다.

 

   잔다르크는 단지 신의 음성을 들었다는 이유로 유명한 인물이 아니다. 그녀는 그 음성을 어떻게 구조화하여 말했는가, 그리고 그것을 통해 어떤 권위를 우회하고 무력화시켰는가로 인해 지금까지 회자되는 존재다. 15차에 걸친 심문 기록은 그녀가 교회라는 권위 구조 내에서 실수 없이 발화함으로써, 제도 종교 내부 논리를 전략적으로 교란시켰음을 입증한다. 그녀의 진술은 무오류하거나 성서 신학적으로 정교한 해석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는 “제가 판단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명령을 들었을 뿐입니다”라는 신념을 반복함으로써, 책임의 주체를 내가 아니라 질문하는 상대에게 전가하고 권력의 중심을 외부로 이탈시키는 언어 전략을 구사했다. 이 구조는 심문관들이 공격을 가할 수 없도록 만든 가장 안정적인 방어선이자, 종교 권위를 상대화하는 논리적 짜맞춤이었다 (Sullivan 1999).

 

   그녀는 교회의 권위를 정면으로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교황을 존중하고, 교회의 판단을 따르겠다고 여러 차례 말한다. 그러나 그 위에 항상 신의 뜻을 두었고, 자신의 계시는 직접적인 상위 권위의 지시사항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교회의 해석 권한을 우회하는 동시에, 그 권위를 절대화시키지 않기 위한 간단하고 명료한 전략이다. 잔다르크는 심문관이 신의 명령과 교회의 판단 중 어느 쪽이 상위인지 선택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심문 자체가 스스로 모순을 드러내게 만들었다. 이런 방식은 교리를 공격하지 않으면서도 그 해석 주체를 무력화시키는 효과를 지녔다 (Castor 2014).

 

   가장 흥미로운 점은 그녀가 말뿐 아니라 행동 전체를 신의 명령으로 통합했다는 점이다. 남장을 한 이유, 깃발을 든 이유, 전투에 앞장선 이유 모두 신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 답했고, 실제로 군복은 자신의 순결을 지키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종교적 의례나 관습을 넘는 행동조차 신의 명령이라는 상위 권위 통제로 포장됨으로써, 그에 대한 도덕적 비판은 그 즉시 주저 않게 된다. 이는 단순한 수동적 신앙이 아니라, 종교 담론을 역이용하여 신체적 행위까지 면책하는 전체적 전략이었다 (Warner 1981).

 

   이 전략이 단지 우연히 성공한 언어적 직감이 아니라는 점은, 그녀의 반복된 응답의 일관성에서 확인된다. 15차례에 걸쳐 남자 옷, 구원의 확신, 계시의 정당성, 전투의 패배 등 동일한 질문이 반복 되었지만, 잔다르크는 어조를 바꾸거나 의미를 철회하는 일이 없었다. 이 같은 반복은 신념의 강도가 아니라, 정치적 언어로서의 완결성을 시사한다. 그녀는 말의 형태를 바꾸지 않음으로써 자신을 해석의 주체가 아닌 그저 운반자 또는 전달자로 위치시켰고, 이는 심문자들이 이단성이나 오만함을 지적하려 할 때마다 부딪히는 무형의 방패가 되었다 (Fraioli 2000).

https://www.imdb.com/title/tt0151137/characters/nm0000518

 

 이러한 언어 전략은 단순히 종교적 교리를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잔다르크는 성서 신학의 교리 조문에 능통한 인물이라기보다, 제도 교회의 헤게모니가 작동하는 방식, 권위가 어디서 발생하고 어떻게 무너지느냐에 대한 직관적 통찰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모든 판단을 외부로 귀속시키며 심문 구조 안에서 말을 통제했고, 결과적으로 자신의 발언은 반박 가능한 해석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반박 불가능한 예언의 형태로 완성되었다. 잔다르크는 장수이자 군인이었고, 예언자이자 정치적 상징 조작자였다. 그러나 동시에, 제도 교회가 작동하는 내부 논리를 활용해 자신을 무적화한 심리전의 언어 설계자였다. 그녀가 단지 똑똑한 여성이 아니라, 제도 종교와 권위 언어의 구조적 약점을 간파한 전략가였다는 사실은, 신의 이름을 반복한 진술보다도 더 중요하다. 이 점에서 그녀는 당시 그 어떤 교황이나 주교보다, 말의 위계를 더 정확히 이해한 인물이었다.

 

   콩피에뉴(Compiègne)에서의 패배는 단순한 전투의 실패가 아니었다. 잔다르크는 자신이 해방시키려 했던 땅에서 브루고뉴군에 포로가 되었고, 곧이어 프랑스 땅이지만 잉글랜드의 점령지였던 루앙으로 이송된다. 이때 그녀는 정치적으로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한 상태였다. 샤를 7세는 침묵했고, 프랑스 왕권은 그녀를 구출하기 위해 어떠한 외교적, 군사적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이미 왕위에 오른 샤를에게 있어 잔다르크는 더 이상 필수 자산이 아니었고, 불안정한 존재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정통성이 확보된 이후, 무계획적으로 움직이는 그녀는 궁정 내에서 점점 ‘불편한 인물’로 전락했던 것이다.

 

   루앙(Rouen)에서의 재판은 프랑스 성직자들이 주도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영국의 통제 하에 이루어진 정치 재판이었다. 피에르 코숑(Pierre Cauchon)을 비롯한 성직자들은 프랑스인이었지만, 잉글랜드의 점령 체제에 충성하는 이들이었다. 잔다르크는 ‘프랑스 교회’가 단일한 권위체로 작동할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 권력은 정치적 입장에 따라 분열되어 있었으며, 그녀는 이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다 (Pernoud & Clin, 1998). 그녀의 전략 감각은 전장에서는 탁월했지만, 종교 권력 구조의 이질성과 권력 내파를 간파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던 셈이다.  또한 잔다르크는 프랑스 내부 정치의 복잡성과 브루고뉴(Bourgogne)의 정치적 입장을 혼동했다. 그녀는 프랑스 내부라면 프랑스 왕권의 통제 아래 있다고 믿었고, 자신이 콩피에뉴에서 싸운 전장이 '프랑스 땅'이라는 점에 의미를 두었다. 하지만 브루고뉴는 당시 영국과의 동맹 하에 있었고, 그녀는 그 지역의 실질적 권력 구도를 오판한 것이다. 이는 프랑스-영국의 이중 전선 속에서, 형식적 국적이 실제 정치 입장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한 판단이었다. 그녀는 정치를 경험했지만, 그 안에서 균열된 충성 구조를 전체적으로 조망하지 못했다 (Wood, 1996).

 

   이 지점에서 그녀의 또 하나의 정체성이 작동한다. 잔다르크는 신의 계시를 받은 존재로 자신을 인식했고, 그것이 사회와 왕권, 교회까지도 관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 신념은 전장 밖의 복잡한 권력 질서 속에서는 위험한 단순화로 작용했다. 그녀는 정치를 신의 도구로 통합하려 했지만, 현실 권력은 그녀의 이상을 수용하지 않았다. 그녀의 종교적 확신은 신앙에 기반한 이상주의였으며, 신의 명령을 통해 사회 전체의 질서를 재편할 수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러한 이상주의는 체제와 권력을 현실적으로 계산하지 않는 믿음이었고, 이는 곧 그녀를 구조 밖으로 밀어내는 결과를 낳았다 (Astell, 2020).

 

   잔다르크는 프랑스 출신임에도 프랑스 내부에서 에뜨랑제(étranger), 즉 철저하게 이방인으로 남게 된다. 그녀는 왕권의 지지도, 교회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대중의 지지에만 의존했고, 그조차도 콩피에뉴 패배 이후 빠르게 와해되었다. 그녀는 전략가이자 선지자였지만, 체계의 설계자가 되지는 못했다. 승리에 기반한 신의 사자는 패배한 순간 마법적 환상으로 전락했고, 체제 바깥에 존재한 자는 결국 체제 내부에 의해 제거되었다. 

 

15차 심문까지 잔다르크는 완벽하게 방어했나?

   잔다르크의 심문은 단순히 이단성을 검증하는 신학적 재판이 아니었다. 15차에 걸친 심문과 질문 구조를 살펴보면, 실제로는 명백한 오류를 입증하려는 목적보다는, 일관된 답변 속의 빈틈을 찾아내려는 함정 파기 전략에 가까웠다. 그녀는 모든 질문에 정답을 내놓은 것은 아니었지만, 동시에 확정적 오답도 피했다. 구원에 대한 확신 여부, 남장 복장의 정당성, 계시의 실재성 등 반복적으로 등장한 쟁점들에 대해 그녀는 회피와 방어 사이를 오가는 절묘한 답변을 유지했다. 문제는 이 점수였다. 그녀는 한 번도 명백한 이단 판정을 받을 만큼 결정적으로 무너지지 않았고, 그렇다고 교리적 신뢰를 줄 만큼 모범적인 정통 답변도 내놓지 않았다. 다시 말해, 잔다르크는 심문 내내 '60점' 수준을 유지한 셈이다.

 

   하지만 제도는 이 '60점' 상태를 견디지 않는다. 답이 없으면 기준을 바꾸는 쪽을 선택한다. 그녀가 함정에 빠지지 않자, 심문관들은 사실상 낙제 기준 자체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사건을 끌고 간다. 이 구조는 특히 구원론 질문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심문관들은 반복해서 그녀에게 구원의 확신 여부를 묻는다. 이는 단순한 신앙 점검이 아니라, 내면의 확신이 외부 발화의 진정성을 담보해야 한다는 구조적 압박이다. 즉, 자신조차 구원을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이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이 과연 얼마나 신뢰 가능한가? 이는 형식적으로는 신학 질문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잔다르크의 인격과 신뢰성 자체를 무너뜨리려는 의도적 장치였다. 여기서 잔다르크는 정통 신학의 전통을 따라 "신의 자비에 맡긴다"고 응수함으로써 위험한 이단적 구원론으로 몰릴 위험은 피했지만, 동시에 회피적 언어라는 비판의 틈을 남긴다. 결국 이 회피는 이단성을 입증하진 못하지만, 제거를 원하는 권력 입장에서는 "불충분하지만 불편한 존재"로 간주되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언어적 압박은 남성 복장과 처녀성 문제에서도 반복된다. 하지만 이 문제들은 오히려 역공의 여지를 남긴다. 남장에 대해서는 전시 상황과 임무 수행의 필요성, 성적 자기 보호라는 맥락이 제공되었고, 이는 단순한 율법 위반이 아니라 윤리적 정당성으로 방어되었다. 처녀성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입증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문제 삼을 경우, 되려 교회의 정당성이 흔들릴 수 있다. 따라서 결국 심문관들은 가장 오래 집요하게 물을 수 있는, 그러나 동시에 가장 모호하게 방어될 수 있는 지점을 공략했다. 그것이 바로 구원의 확신이었다.

 

   결국 잔다르크의 심문은 신학적 오류를 입증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필요에 따라 낙제의 기준선을 조정함으로써 종결되었다. 그녀의 발언은 전체적으로 정통 교리를 벗어나지 않았고, 결정적 파열음을 내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문제였다. 교회와 정치권력은 그녀를 이단으로 만들고자 했고, 그 과정에서 모호한 답변, 반복되는 회피, 불편한 신념들은 결정적 증거 없이도 위험한 인물이라는 인식을 구축하는 데 기여했다. 이는 잔다르크가 스스로 이단이 되었다기보다는, 이단으로 만들어졌다는 판단을 가능하게 한다. 심문관들 역시 이 억지스러운 구조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제거의 필요가 신학적 완결성보다 우선되던 시대, 그 억지는 그대로 작동했다 (Sullivan 1999; Pernoud & Clin 1998).

치졸한 함정, 구원의 문제

   잔다르크에 대한 15차 심문은 단순한 신학적 오류의 입증이나 검증이 아닌, 반복심문(Repetitive Questioning)을 통한 인물의 신뢰성 붕괴 전략에 가까웠다. 질문의 핵심은 늘 비슷했지만, 맥락을 바꿔가며 답변의 일관성을 시험했다. 특히 "구원에 대한 확신 여부"는 가장 빈도 높게 제시된 질문 중 하나였다. 당시 교회는 구원론을 중심으로 수많은 이단들을 정죄한 전례가 있었기에, 이 주제는 심문관들이 구축하기에 가장 편리한 함정이기도 했다.

   이 질문이 이끌어가는 방향이 일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구원에 대한 답변은 어떤 형태로든 위험을 수반했다. "구원을 확신한다"고 대답하면 하나님의 은총 없이도 스스로 구원받는다고 믿는 펠라기우스주의(Pelagianism)나, 인간의 의지가 은총과 협력한다는 반펠라기우스주의(Semi-Pelagianism)로 해석될 수 있다. 반대로 "확신하지 못한다"고 말하면, 이는 신의 약속에 대한 불신으로 간주되어 정죄받은 예정론 극단주의나 재세례파의 불안정한 구원관과 겹칠 수 있다. "모른다"는 답변 역시 무신론적 회의주의나 구원의 개념 자체를 부정하는 카타르파(Gnostic-Catharism) 계열의 사고와 연결될 위험이 있었다. 심지어 "구원은 신의 뜻에 달렸다"는 중립적인 진술조차도, 계시를 직접 받았다고 주장한 인물에게는 자가 모순에 빠질 염려가 있었다. 구원을 확신하지 못하는 신의 '전달자'란 존재할 수 없다는 역공의 명분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잔다르크는 구원론 질문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응답해도 함정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구조 속에 있었다. 심문관들은 이 구조를 적극 활용하여 단지 그녀의 교리 지식을 묻는 것이 아니라, 반복심문을 통해 그녀 스스로 말의 일관성을 무너뜨리고, 말실수 혹은 자기 모순을 유도함으로써 이단성을 정당화하려 한 것이다. 실제로 그녀는 한결같이 "신의 뜻에 달렸다"는 답변을 고수했다. 이는 교리적 오류를 피하기 위한 전략이었으나, 반복되는 심문 속에서는 방어라기보다 회피로 간주될 여지가 있었다. 잔다르크가 신학을 전문적으로 습득한 인물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이러한 언어적 함정들이 체계적으로 분석된 결과물이라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녀는 신과 교회의 권위 구조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고, 구원의 문제를 개인 확신이 아닌 상위 권위의 판단에 위임함으로써 함정에서 벗어나고자 한 것이다.

 

   그녀가 견고한 교리 지식 없이도 이 같은 방어 전략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작용했다. 첫째, 반복심문에도 불구하고 발화의 핵심 구조를 바꾸지 않았다는 점에서, 최소한의 일관성을 유지한 언어 감각이 있었다. 둘째, 어떤 답변도 곧장 낙인으로 연결되는 구조 속에서, 책임의 주체를 자신이 아닌 신에게 전가함으로써, 심문관이 공격할 대상을 명확히 설정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잔다르크는 말의 주체가 아닌 수신자, 또는 단순 전달자의 위치에 자신을 고정시킴으로써, 비판 가능성을 차단하고자 했다.

 

   이러한 심문 구조는 잔다르크를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전환점을 제공한다. 그녀는 정통 신학자가 아니었고, 정답을 알고 있지도 않았다. 그러나 심문이 정답을 요구한 것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그녀의 방어는 다른 기준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구원론이라는 주제는 하나의 교리 검증이 아니라, 그 어떤 대답도 신뢰 붕괴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적 장치였다. 잔다르크는 이 장치를 정확히 해체하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그 중심부에 진입하지 않으려는 일관된 언어 전략을 유지했고, 바로 그 점이 그녀의 방어를 가능하게 했다 (Sullivan 1999; Pernoud & Clin 1998).

 

잔다르크가 겪은 15차까지의 구원론의 문제를 요약하자면

항목 기존 해석 내 해석
구원론 질문 교리 정통성 테스트
실수를 유도하기 위한 반복적이고, 고의적 함정으로 설계
질문 목적 진술 진위 확인
반복 질문으로 피의자 말실수 유도, 신뢰 붕괴 전략
신학 해석 이단으로 몰아가고 싶다
어떤 답변도 다 이단 프레임으로 해석 가능한 구조
결론 방어 잘했다
뫼비우스 구조 안에서 방어가 거의 불가능한 시험이었다. 그러나 방어 성공

 

그래서..

   잔다르크는 단지 하느님의 음성을 들은 신비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당대의 구조를 직관적으로 파악하고, 말과 행동으로 권위의 경계를 재구성한 인물이었다.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 농민 출신의 10대 소녀가 교회 심문을 15차례나 받으며 스스로의 신념을 철회하지 않고 대응했다는 점은 단순한 신앙심 이상의 지적 감각을 보여준다. 그녀는 교황과 교회의 권위를 인정하면서도 그 위에 신의 뜻을 두는 언술 전략으로, 직접적 충돌을 피하면서도 제도적 권위를 상대화하는 말의 설계를 택했다. 전장에서 그녀는 명령이 아닌 판단으로 승리를 끌어냈고, 정치적으로는 샤를 7세의 왕권 정통성을 선언함으로써 프랑스의 질서를 다시 쌓는 데 기여했다.

 

   패배 이후에도 그 책임을 하느님이나 동료에게 돌리지 않고 자신에게 귀속시키는 태도는 단순한 전략가가 아니라 인격자였음을 증명한다. 그러나 그녀의 언술이 단지 도덕적이거나 경건한 수준에서 끝난 것은 아니다. 신학적으로 완벽한 답변을 이어갔다고 보기 어렵지만, 심문단이 의도한 신학적 오류의 함정을 놀라울 정도로 치밀하게 피해갔다. 구원 확신, 개인 계시의 우위, 성인과의 대화 같은 이단적 낙인을 유도하는 질문에 그녀는 “신의 뜻에 맡긴다”, “나는 들은 것을 전달할 뿐이다”라는 반복된 구조로 대응했다. 이 전략은 해석의 책임을 외부로 이전시킴으로써, 교리의 오용 가능성을 차단하고, 반박 자체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신학을 학문적으로 숙지한 인물은 아니었지만, 그 체계가 작동하는 방식과 금기의 경계를 직관적으로 이해한 언어의 설계자였다.

 

잔 다르크의 본명은 Jehanne, d'Arc는 성이 아니라 아버지 이름에서 딴 식별 코드 같은 것.
잔 다르크는 Jehanne la Pucelle, 처녀 잔이라 불렀다.
Jehanne, daughter of d’Arc가 Jehanne d’Arc로 현대식 이름처럼 만들었다.
잔, 다르크의 딸이 잔 다르크가 된 셈.

 

   요보비치는 실제 정신치료를 받으며 연기했다.
밀라 요보비치는 이 역할을 맡은 뒤 촬영 중 정기적으로 정신 상담을 받아야 했다.
인터뷰에서 “대사를 외운 것이 아니라, 내가 무너지는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후반부로 갈수록 감정 조절에 어려움을 겪은 장면들이 편집 없이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신성모독 논란에 휘말렸을 때 뤽 베송은 반격했다. 이 영화는 프랑스 보수 진영으로부터 거센 반발을 받았다.
잔다르크의 계시를 신학적 실재가 아닌 환상과 외상 반응으로 묘사한 점이 신성모독으로 간주된 것이다.
프랑스 국립역사위원회 일부는 공식 성명을 통해 영화의 이단성을 비판했다.
이에 대해 베송은 “나는 잔다르크를 의심한 게 아니라, 의심 자체를 다뤘다”고 반박했다.

 

 

최대한 간략하게 1-15차 잔다르크 심문을 요약

차수 심문관 질문 요약 잔다르크 방어 요약 코멘트
1차 어떤 계시를 들었어? 프랑스 구원, 오를레앙 해방, 왕의 랭스 대관식   
2차 계시 내용은 계속 같아? 프랑스 구원, 샤를 7세를 섬겨라, 개인적 조언   
3차 1 왕세자를 어떻게 알아봤나?, 2 그에게 어떤 비밀을 말했나? 1 神의 계시, 목소리들의 지시와 확인
2 神이 왕세자를 프랑스의 왕으로 세웠다는 확신
1 눈썰미
2 비밀서약을 어기면 왕권에 도전하는 행위가 됨
4차 깃발의 의미와 상징성? 神의 이름으로, 프랑스 문장, 승리, 40배 더 큰 애정  리더로서 깃발의 상징성을 인식
5차 잔다르크 구원의 확실성? 神을 믿고 그 분의 자비에 의지 구원론에 대한  회피
6차 1 교회 명령 vs. 목소리 명령?
2 교회 권위에 복종 안 해?
1 神을 먼저 섬기고 교회를 섬김
2 神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 한 복종
1 神의 권위로 방어
2 神의 권위로 방어
7차 자신의 판단 vs. 교회의 판단? 내 판단이 아님, 神 뜻, 교회는 해석 권위 인정
神이 직접 말씀하는건 아님
神의 권위로 방어
8차 1 전쟁 패배, 목소리의 책임? 
2 남자 옷 착용의 정당성?
3 깃발에 특별한 힘이 있는지? 4 교회 판단 vs. 목소리 판단?
1 포로될 것 경고 받았음, 내 결정임
2 임무 수행 필요, 순결 유지 도움, 교회 판단 따를 준비가 됨, 神의 뜻 존중
3 마법적 힘 없음, 승리는 神으로부터 온다
4 교회의 판단이 神의 의지보다 위일 수 없음
1 神의 실패가 아니라 본인 결정
2 군인 군복 입는데 왜?
3 전술적 상징
4 교회 위의 神의 권위로 방어
9차 목소리들이 특정 전략/전술 알려줬나? 용기와 격려만 ,구체적 전술은 군대의 지휘관들과 함께 결정.
난 교만하지 않아
10차 1 모든 전투 승리 하지 못함
2 콩피에뉴 포로될 것 알았나?3 왜 목소리 경고를 무시하고 남았나? 
1 파리 공격이 실패는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시기도
2 경고 받음, 神의 뜻에 따라 남음. 콩피에뉴를 돕는 것이 하느님의 뜻.
3 포로가 되는 것도 신의 계획의 일부
1 잔다르크의 신앙 면모
2 본인 결정. 신의 실패가 아님. 
3 모든 결과는 신의 계획 너 반박 가능?
11차 1 교황의 권위 인정?
2 너 행동 교회의 판단 받아라!
3 죽으면 어디로 가나?
4 성인들과 대화는 교회 법에 어긋남
5 자신의 믿음이 다른 사람보다 더 옳다고 생각하는지
1 神 다음으로 교황님을 존경 교회의 가르침 존중
2 神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 한 교회의 판단에 따를 것
3 神의 뜻대로 살았다면, 천국에 갈 것
4 보고 들은 것을 말씀드릴 뿐
5 난 사명을 충실할 뿐, 모든 판단은 神께 달려 있다. 
1 교회의 권위를 재확인.
2 神의 권위로 방어
3 확신은 없다고 해서 회피.
4 반박 가능함?
5 神의 권위로 방어
12차 1 계시의 해석은 월권
2 남자 옷 입는거 맘에 안들어
3 깃발? 우상숭배야!
4 교회의 판단 벗어나면 혼나!
1 해석한적 없다
2 전쟁터 임무수행중인 군인이다.
3 내 신앙의 상징
4 신은 내 편이야. 난 진실만 말해
1 응 아니야 난 전달자
2 군인이 군복입은거야. 내 순결 소중해
3 아니야. 그저 상징이야.
4 神의 권위로 방어
13차 1 교회가 네 주장 인정 X
2 남자 옷 계속 입을래?
3 네 주장 거짓, 교회 따를래?
1 神 다음이 교회야
2 남자 옷은 신의 명령, 입지 말라면 안 입겠다
3 신의 의지와 교회가 일치하면 따름
1 神의 권위로 방어
2 안 입어. 현명한 처사 맞아?
3 神의 권위로 방어
14차 1 직접 계시는 교회랑 안 맞아!
2 神의 뜻을 안다고?
3 예언? 실패 했는데?
4 너 뭐 특별해?
1. 난 전달자고 스피커야
2. 안 다고 하지 않았다. 난 전달자
3 내가 실패한거야. 신은 실패하지 않아
4 난 그저 神의 종
1 神의 권위로 방어
2 神의 권위로 방어
3 神의 권위로 방어
4 난 그냥 神의 의지대로 함
15차 1 너 교회에 개길거 같은데?
2 남자 옷 그만 입어
3 모든 주장 철회 콜?
1 난 神의 뜻에 따름
2 입지 말라면 안 입어
3 내 모든 잘못은 神이 아신다. 난 사명을 다 한다
1 神의 권위로 방어
2 현명한 처사 맞아?
3 교회 위의 神의 권위로 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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