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아웃 오브 아프리카, Out of Africa, 1985

napigonae 2025. 4. 12. 15:53

불륜? 그런거는 빼고..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1985년 시드니 폴락(Sydney Pollack) 감독이 메릴 스트립(Meryl Streep)과 로버트 레드포드(Robert Redford)를 주연으로 내세워 7개의 아카데미상(Academy Awards)을 수상한 명작이다. 카렌 블릭슨(Karen Blixen)과 데니스 핀치 해튼(Denys Finch Hatton) 사이의 관계는 영화의 중요한 요소이지만, 이 작품의 본질은 자아 발견과 자유에 관한 이야기다. 카렌의 여정은 식민지 시대 아프리카(Africa)에서 한 여성이 독립성과 정체성을 찾아가는 강력한 스토리이다. 1913년, 덴마크(Denmark) 귀족 출신인 카렌은 편의적 결혼을 통해 케냐(Kenya)로 향한다. 남편의 부재와 불성실함, 그로 인한 매독 감염은 그녀를 고립시키지만, 동시에 자신만의 삶을 개척하는 계기가 된다.

 

   영화의 진정한 가치는 카렌이 아프리카의 땅과 사람들 사이에서 발견하는 자아와 정신적 성장에 있다. 그녀는 농장을 직접 운영하며 현지인들과 관계를 맺고,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는 법을 배운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불륜이라는 표면적 요소를 넘어, 문화적 충돌, 식민지 시대의 복잡한 인종 관계, 자연과 인간의 공존, 그리고 자유와 소속감 사이의 균형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단순한 로맨스가 아닌, 인간과 자연,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보편적 탐색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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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식민지 케냐와 정치적 상황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10년대부터 1930년대 초반의 케냐는 영국 동아프리카 보호령(British East Africa Protectorate)에서 1920년 케냐 식민지로 전환되는 시기였다. 1895년부터 영국의 통치하에 있던 이 지역은 1902년 우간다 철도의 완공으로 백인 정착민들의 유입이 급증했다. 영국 정부는 이른바 '백인 고원지대(White Highlands)'라 불리는 케냐 중앙 고원 지역을 유럽인 정착민들에게 할당했는데, 이는 원래 키쿠유족(Kikuyu)을 비롯한 현지 부족들의 전통적 영토였다.

 

   1차 세계대전 동안 약 45,000명의 아프리카인들이 영국을 위해 복무했으며, 이 경험은 이후 케냐인들의 정치 의식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영화에서 그려지는 시기는 바로 이러한 식민지 확립과 원주민 저항 의식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과도기였다. 특히 1915년 원주민토지법(Native Land Ordinance)은 아프리카인들의 토지를 "원주민 보호구역(Native Reserves)"으로 한정하고, 그들을 유럽인 농장의 노동력으로 활용하기 위한 정책이었다.

 

   짓밟힌 권리를 되찾기 위한 케냐인들의 정치적 움직임도 이 시기에 시작되었다. 1921년 해리 스럭(Harry Thuku)이 '영아프리카인협회(Young Kikuyu Association)'를 설립하여 땅의 반환과 인두세(hut tax) 폐지를 요구했다. 이러한 정치적 긴장은 영화 속에서 직접적으로 다뤄지지는 않지만, 카렌 블릭슨(Karen Blixen)의 농장과 현지인 노동자들 사이의 관계에서 미묘하게 드러난다.

키쿠유족과 유럽 정착민 간의 문화적 갈등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진 문화적 갈등은 땅에 대한 인식 차이에서 비롯된다. 키쿠유족에게 땅은 단순한 소유물이 아닌 조상과 연결된 신성한 존재였다. 역사학자 고팅 무쿠바(Godfrey Muriuki)의 '키쿠유 민족의 역사(A History of the Kikuyu 1500-1900)'에 따르면, 키쿠유인들은 땅을 "음완다(mwanda)"라 불렀는데, 이는 단순한 공간을 넘어 조상과 후손을 잇는 연결고리를 의미했다.

 

   반면, 유럽 정착민들은 땅을 소유하고 착취할 수 있는 자원으로 보았다. 이 시각 차이는 영화에서 데니스 핀치 해튼(Denys Finch Hatton)이 카렌에게 "아프리카를 소유할 수 없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인식 차이는 '스쿼터(squatter)' 제도를 통해 더욱 복잡해졌다. 스쿼터는 유럽인 농장에서 일하는 대가로 작은 땅을 경작할 권리를 얻은 아프리카인들을 가리키는데, 이는 전통적 토지 관계를 왜곡시켰다.

 

   스쿼터 제도는 식민지 시대 케냐의 농업 경제에서 핵심적인 노동력 체계 중 하나로 이 제도 하에서 아프리카인들은 유럽인 소유의 농장에서 일하는 조건으로 일정한 구역을 경작하거나 가축을 기를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았다. 그러나 이 권리는 법적으로 보장된 소유권이 아니라 철저히 고용주인 유럽인의 재량에 의존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구조는 아프리카인들의 토지 자율성을 약화시키고, 전통적인 공동체 중심의 토지 이용 관습을 해체하는 데 기여했다. 스쿼터는 임금 노동자이자 동시에 제한된 자급자족의 삶을 병행해야 했기 때문에, 경제적 의존과 문화적 억압이 동시에 작동하는 계급으로 존재했다.

 

   교육과 의료에 대한 접근에서도 문화적 갈등이 있었다. 영화에서 카렌이 농장 학교를 열고 원주민들을 치료하는 장면은 당시 선교사들이 주로 담당했던 '문명화 사명(civilizing mission)'의 한 측면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는 종종 현지 문화와 지식체계를 열등하게 취급하는 결과를 낳았다.

야생동물 보호와 밀렵 문제

   1900년대 초 동아프리카는 사파리 사냥이 유행하던 시기였다. 영화에서 데니스가 사냥꾼이 아닌 사진작가로 묘사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실제로 이 시기는 무분별한 사냥에서 보전 정신으로 전환되기 시작한 때였다. 1909년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의 케냐 사냥 원정에서만 약 512마리의 큰 포유류가 사냥되었고, 이는 야생동물 감소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시어도오 루즈벨트의 백인우월주의에 제국주의 세계관을 인물로 흑인, 황인을 '문명화 대상'으로 바라본 인물이다. 이런 사고 방식이 가쓰라-태프트 밀약(Katsura-Taft Agreement, 1905)을 통해 반영되었다. 

 

   1907년 최초의 게임 보호구역(Game Reserve)이 케냐에 설립되었으며, 1945년에는 나이로비 국립공원(Nairobi National Park)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런 보호 정책은 종종 현지인들의 전통적 사냥 권리를 무시했다. 역사학자 로드릭 네우만(Roderick Neumann)의 연구에 따르면, 식민지 시대의 보전 정책은 "무분별한 원주민 사냥꾼"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며 실제로는 유럽인 사냥꾼들의 과도한 사냥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었다.

나이로비 국립공원, https://mambo.hypotheses.org/446

 

   영화에서는 직접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지만, 1920년대 케냐에서는 상아를 위한 코끼리 밀렵이 심각한 문제였다. 1925년에서 1932년 사이에만 공식적으로 기록된 상아 수출량은 연간 약 200톤에 달했으며, 이는 대략 8,000마리의 코끼리에 해당하는 양이었다. 데니스 핀치 해튼과 같은 인물들이 선구적으로 시작한 야생동물 사진 촬영은 이후 생태관광(eco-tourism)의 토대를 마련했고, 케냐 경제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백인 이주민의 시각, 케냐 원주민의 시각

   영화 속에서 유럽 이주민들의 케냐 인식은 19세기 말~20세기 초 식민주의 사고방식을 반영한다. 당시 이주민들에게 케냐는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가 '고귀한 야만인(noble savage)'이라 표현한 개념이 구현된 땅이었다. 당시 백인 정착민들은 케냐를 '미개발된 낙원'으로 인식했고, 이는 그들에게 '문명화 사명'을 수행할 권리와 의무를 부여한다고 믿었다.

 

   부부학자 베른트(Betty, Michael Berndt)의 민족지학 연구에서는 당시 영국인 정착민들이 케냐를 '빈 땅(terra nullius)'으로 간주했음을 지적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케냐에 진보를 가져온다고 생각했으며, 1908년 설립된 '식민지 협회'의 문서에는 '아프리카 땅의 잠재력을 실현시키는 것은 유럽인의 의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영화에서 카렌 블릭슨은 초기에 이러한 전형적인 식민지적 시각을 공유하지만, 점차 변화한다. 그녀가 처음 케냐에 도착했을 때 농장을 "나의 아프리카(my Africa)"라고 부르는 소유적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이러한 관점을 보여준다.

 

   반면, 케냐 원주민들의 백인 이주민 인식은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많이 드러나지 않지만, 역사적 자료를 통해 추론할 수 있다. 케냐 학자 오굿(Bethwell Ogot)의 연구에 따르면, 키쿠유족은 백인들을 초기에 '긴 칼을 가진 이들(athungu a kahiu karaihu)'이라 불렀다. 이는 단순한 묘사를 넘어, 폭력적 침략자로서의 인식을 담고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땅에 대한 인식 차이다. 케냐 학자 키냐티(Maina wa Kinyatti)의 기록에 따르면, 키쿠유 장로들은 "'은 팔 수 없다, 오직 사용할 뿐이다(Land cannot be sold, only used)'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에게 땅은 '무구무(Mugumu)'라 불리는 공동체적 자원이었으며, 개인이 소유할 수 없는 신성한 것이었다.

 

무구무나무. https://www.namibian.com.na/the-strangler-fig-ficus-burkei-f-thonningii/

 

   키쿠유어로 '무구무'라 불리는 것은 신성한 무화과나무(Ficus thonningii)를 의미한다. 이 나무는 키쿠유 공동체에게 단순한 식물을 넘어 깊은 문화적, 영적 의미를 지닌다. 무구무는 조상들의 영혼이 깃드는 곳으로 여겨져 공동체의 역사와 기억을 담고 있는 상징이었다. 또한, 전통적으로 공동체의 중요한 의식이나 모임이 무구무 나무 아래에서 열렸기에, 공동체의 단결과 정체성을 나타내는 중심 역할을 수행했다.

 

   웅장하게 자라는 무구무 나무는 자연의 강인함과 생명력을 상징하며 경외의 대상이었다. 특히 땅에서 뿌리내리는 특성상 땅의 신성함과 연결되어, 땅이 개인의 소유가 아닌 공동체의 공유 자원이라는 키쿠유족의 전통적 관념을 반영하는 중요한 상징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무구무'는 단순한 나무 이상의 의미를 지닌, 키쿠유 공동체의 정신적 지주와 같은 존재였다고 할 수 있다. 영화에서 카렌의 농장 노동자들이 그녀를 '음사이부(Msabu, 여주인)'라 부르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모습은, 지배-피지배 관계를 인정하면서도 완전히 동화되지 않는 문화적 저항의 형태로 볼 수 있다.

아름다움 속의 위험한 시선

   영화는 단순히 서정적인 회고로 소비되기에는 조심스럽게 들여다봐야 할 구조적 전제를 품고 있다. 영화는 식민지 케냐를 배경으로 유럽 여성의 내면적 성장을 그리지만, 아프리카는 그 여정을 위한 배경으로만 존재한다. 원주민들은 대사가 거의 없고, 감정선이 서사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연처럼 그려지며, 주인공의 감정을 반사하는 표면으로 기능한다.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는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에서 서구가 타자를 바라보는 방식은 이해가 아니라 통제의 수단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 영화 속 아프리카는 바로 그런 ‘이해된’ 공간으로 재현된다. 카렌 블릭슨은 자연과 타자의 세계 속에서 자기 성찰을 이룬다. 하지만 그 타자들은 끝까지 침묵 속에 남는다. 영화의 제목인 Out of Africa는 결국 ‘아프리카를 벗어나야 이야기가 완성된다’는 구조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케냐 작가 응구기 와 티옹오(Ngũgĩ wa Thiong’o)는 『Decolonising the Mind』에서 식민지 문학은 토착 문화를 소거하고, 제국의 시선을 정당화한다고 말한다. Out of Africa 역시 그런 경향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카렌은 현지인을 존중하는 인물처럼 그려지지만,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문명화된 주체’로서의 위치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는 마이클 트루닝거(Michael Truninger)가 "경험의 재식민화"라고 부른 구조와도 맞닿아 있다. 아프리카는 주체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유럽인의 경험 안에서 다시 배치된다. 영화는 한 여성의 삶을 통해 어떤 보편적 메시지를 전하는 듯하지만, 그 보편은 누구의 시선에 기반한 것인지 물을 필요가 있다. 아프리카는 그저 ‘배경’이었는가, 아니면 침묵당한 타자의 서사였는가. 이 영화의 아름다움은 거기에 대한 성찰 없이는 진정한 감동으로 이어질 수 없다.

소유는 자유을 저해한다

   영화는 '소유를 넘어서 집착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주인공 카렌 블릭슨의 여정은 이러한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처음 케냐에 도착한 카렌에게 농장은 소유욕의 대상이자 성공을 위한 발판이었다. 그녀는 커피 농장을 통해 안정적인 삶을 구축하고 아프리카에 뿌리내리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경험은 소유의 덧없음을 깨닫게 한다. 커피 농장의 실패,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등 예측 불가능한 사건들을 겪으면서 카렌은 물질적인 소유에 집착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과 자유를 가져다주지 않음을 점차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특히 데니스 핀치 해튼과의 관계는 이러한 주제를 더욱 부각시킨다. 데니스는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이다. 그는 카렌에게 "아프리카를 소유할 수 없다(You can't own Africa)"고 말하며 소유의 개념을 초월한 존재 방식을 보여준다. 이 말은 단순한 지리적 사실을 넘어, 자연과 인간, 그리고 경험은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그 일부가 되어 함께하는 것이라는 깊은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

 

   메시지는 한국의 승려이자 작가인 법정 스님의 '무소유' 개념과도 깊이 연결될 수 있다. 법정 스님은 진정한 자유는 물질적인 소유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비움으로써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카렌 역시 광활한 아프리카의 자연과 그곳에서의 소중한 경험들을 소유하려 했지만, 결국 농장을 잃고 떠나게 된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속에는 아프리카에서의 강렬했던 순간들과 사람들과의 관계가 고스란히 남아, 역설적으로 진정한 자유를 얻었음을 보여준다. 그녀가 아프리카에서의 삶을 회고하며 글을 쓰는 행위는 물질적인 소유를 넘어선 정신적인 가치와 경험의 중요성을 드러내는 '무소유'의 정신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물질적인 소유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순간의 경험과 관계에 집중할 때 비로소 진정한 자유와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는 깊은 통찰을 우리에게 던져준다. 데니스의 "아프리카를 소유할 수 없다"는 말처럼, 때로는 내려놓음으로써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역설적인 진리를 영화는 아름다운 영상과 감동적인 스토리로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변화한 미적 감각과 서사 흐름

  영화의 주제적 접근 방식도 시대착오적으로 보일 수 있다. 식민지 시대 아프리카를 유럽인의 시각에서 그린 점, 원주민들이 주로 배경으로 등장하는 점 등은 포스트콜로니얼(post-colonial) 관점에서 비판받을 여지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단순히 시대에 묶인 작품으로 치부할 수 없는 여러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영화는 시각적 스토리텔링의 교과서적 사례다. 케냐의 광활한 자연을 담아낸 시네마토그래피는 오늘날에도 탁월한 미학적 성취로 평가받는다. 특히 음바라카(Ngong Hills)의 일몰 장면, 비행 시퀀스의 항공 촬영, 사바나 초원의 파노라마는 어떤 디지털 이미지도 쉽게 대체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지닌다. 로저 에버트(Roger Ebert)는 이 영화를 '자신의 시간을 만들어내는 영화(a film that creates its own time)'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오늘날 더욱 시간을 되짚어볼 가치를 부여한다.

https://mubi.com/en/kr/films/out-of-africa

 

   오늘날 이 영화를 보는 것은 단순한 클래식에 대한 존중을 넘어, 다층적인 문화적 경험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느림의 미학"을 경험하게 한다. 클릭과 스와이프의 시대에 2시간 40분 동안 한 인물의 내적 여정에 집중하는 경험은 그 자체로 명상적이다. 또한 영화가 보여주는 식민지 시대의 모습은, 역설적으로 현대 관객에게 중요한 역사적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오리엔탈리즘' 렌즈를 통해 이 영화를 비판적으로 읽는 과정은, 오늘날 우리의 시각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기술적 측면에서도, CGI와 디지털 효과가 범람하는 시대에 실제 로케이션과 자연광을 활용한 영화 제작 방식을 감상하는 것은 독특한 가치가 있다. 아날로그 영화 제작의 정수를 보여주는 이 작품은 영화 언어의 역사를 이해하는 중요한 이정표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현대에 다시 보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명작을 감상하는 차원을 넘어, 시간과 공간을 가로지르는 다층적 대화에 참여하는 경험이다. 이 영화는 우리의 변화한 감각과 관점을 통해 새롭게 해석될 수 있으며, 동시에 우리의 감각과 관점을 확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현대의 빠른 소비문화 속에서, 이처럼 천천히 음미할 수 있는 작품을 경험하는 것은 일종의 문화적 기회비용을 지불할 만한 가치 있는 선택이다.

그래서...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특정 인물의 사랑 이야기를 넘어, 식민지 시대라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문명화라는 이름으로 가려진 우월주의, 그리고 그와 충돌하는 생존의 자연스러움을 함께 담아낸 영화다. 이 작품은 단지 한 여인의 회고가 아니라, 시대와 권력, 문화가 얽힌 복합적인 흐름의 산물이다. 유럽 이주민들의 땅에 대한 소유욕과 현지인들의 공동체적 감각, 문명을 주입하려는 선의의 시도와 그로 인해 무시된 전통의 가치들까지, 영화는 침묵 속에서도 이 모든 긴장을 품고 있다.

 

   영화는 결국 살아간다는 것이 단지 생존이 아니라, 타인과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관계 맺는가에 관한 문제임을 보여준다. 카렌의 여정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이야기 이전에, 자신이 서 있는 자리와 바라보는 시선을 성찰하는 과정이다. 문명이라는 이름의 힘이 자연을 덮을 수 있다고 믿었던 시대, 그러나 그 자연은 끝내 소유되지 않고 남았다. 이 영화는 그 소유할 수 없는 것들과 함께 살며 이해하고자 했던 한 인간의 기록이며, 동시에 우리가 여전히 답하지 못한 질문들, 무엇이 우리를 문명화하고, 또 무엇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가에 대한 서사다.

 

   실제 '카렌 블릭슨'은 필명 '이삭 디네센(Isak Dinesen)'으로 더 잘 알려져 있었다 그녀의 본명은 카렌 크리스티네 디네센 블릭슨(Karen Christenze Dinesen Blixen)이며, 덴마크에서는 그녀의 필명보다 본명이 더 유명하지만, 영미권에서는 오히려 'Isak Dinesen'이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읽혔다. 이 필명은 그녀가 문학계에 여성 작가로 알려지는 걸 꺼렸기 때문에 선택한 이름이었다.
   촬영지는 실제 케냐였으며, 블릭슨의 실제 농가에서 가까운 곳이었다 영화는 전부 케냐 현지 로케이션에서 촬영되었으며, 블릭슨이 살던 지역인 음바라카 언덕(Ngong Hills) 근처에서 실제 촬영이 진행되었다. 현재 이 지역은 '카렌 지구(Karen District)'라 불리며 고급 주택가가 형성되어 있다.
   카렌 블릭슨의 농장은 지금도 박물관으로 남아 있다.'Karen Blixen Museum'이라는 이름으로 운영 중이며, 영화 촬영지와 매우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실제 농장 건물이 아직도 유지되어 있어, 영화 팬들과 역사 애호가들의 명소다.
   영화 촬영 중 동물 관련 법규로 인해, 수입된 동물이 아닌 현지 동물만을 사용할 수 있었다. 당시 케냐의 보호법에 따라 외부에서 사파리 동물을 반입할 수 없었고, 촬영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모두 현지 야생동물들이거나 훈련된 현지 동물들이었다. 감독은 동물과의 거리, 시간대까지 엄격하게 조절해 장면을 연출해야 했다.

Gipsy Moth. https://silodrome.com/de-havilland-gipsy-moth/

   사운드트랙 작곡가 존 배리(John Barry)는 아카데미 수상 이후, 이 작품을 자신의 최고작 중 하나로 꼽았다 메인 테마곡 ‘Flying Over Africa’는 이후 다큐멘터리와 광고 등에서 반복적으로 쓰이며 독립적인 클래식으로 자리 잡았다. 그가 만든 이 곡은 실제로 카렌 블릭슨이 비행하는 장면에 맞춰 작곡되었으며, 녹음도 실제 영화 촬영 장면을 보며 이루어졌다.

Flying Over Africa 유튜브

Flying Over Africa
   데니스 핀치 해튼의 실제 비행기 기종은 'Gipsy Moth'였으며, 영화에서도 동일 기종이 등장한다. 1920년대의 쌍엽기 기종으로, 지금은 클래식 항공기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비행기다. 영화에 등장하는 항공 장면은 대부분 실제 비행 장면이며, 항공기 착륙 장면은 모두 수작업으로 진행되었다.
   메릴 스트립은 카렌 블릭슨의 덴마크 억양을 완벽히 익히기 위해 덴마크어 교사에게 수개월간 사사했다. 그녀는 대사 속에서 억양뿐만 아니라 발성 방식까지 덴마크식 영어 억양으로 구현했으며, 이는 실제 블릭슨의 녹음 자료를 청취하며 연구한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