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라스트 모히칸, 1992; 살아남은 호크아이와 다 잃고 죽은 마구아

napigonae 2025. 4. 9. 23:17

 

'라스트 모히칸’은 왜 모히칸이 없는 영화로 끝나는가?

   주인공과 함께 자란 동생 운카스(Uncas)는 모히칸의 계승자다. 그의 정체성은 계보, 혈통, 문화, 감정, 그리고 삶의 궤적 모두에서 이 서사의 제목에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그는 ‘모히칸(Mohicans)’이라는 이름을 유전적, 문화적으로 이어받은 인물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를 죽인다. 영화는 운카스의 죽음 통해 ‘이야기의 계승 가능성’을 완전하게 멈춘다. 운카스가 죽는 순간, 늙은 모히칸은 하나만 남게된다. 운카스의 죽음은 모히칸족의 계승이 끊어졌음을 의미한다.

 

   아버지인 츄잉가(Chingachgook)는 살아남는다. 그러나 그는 더는 계승자가 아니다. 영화는 그를 다음 세대를 낳을 자로 보여주지 않는다. 그는 운카스를 애도하면서도, 이어지는 장면에서 스스로를 "마지막 모히칸"이라 말한다. 그는 살아 있는 동시에 소멸을 선언하는 자다. 그는 존재하지만 부족을 잊는다는 미래는 없다. 이 인물은 영화의 마지막에서 감정의 중심이 되지 못한다. 그는 살아남은 유일한 모히칸으로서 자격은 있으나, 이야기에서 떠나야 할 인물로 정리된다.

 

   이제 남은 인물은 호크아이(Hawkeye)다. 그는 백인으로 정체성은 원주민과 전통적 관계를 맺고 있지만, 그 관계는 문화적 전이의 결과이지 유전자 계보의 일부는 아니다. 그는 입양되었고, 원주민 방식으로 살아왔지만, 혈통적으로는 모히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영화의 마지막에 감정과 여운을 이어주는 사람으로 남는다. 그는 죽지 않았고, 떠나지도 않는다. 백인 입양자 모히칸의 시선에서 감정을 따라가며, 살아남은 자의 시선을 통해 관객과 연결된다. 그는 말이 없지만, 말이 필요 없다. 관객은 그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스스로 정리한다. 열린 결말의 여운을 살짝 내비친다.

 

   이 정리에서 중요한 건, '누가 말하는가'가 아니다. '누가 계속 존재하는가'다. 운카스는 죽었고, 츄잉가는 곧 사라질 것이다. 호크아이는 남는다. 감정은 그를 통해 정리되고, 관객은 그의 위치에서 비극을 체험한다. 이 서사는 백인을 영웅화하지 않는다. 그를 비극의 생존자로 두면서 감정의 교감, 연결 고리로 삼는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호크아이는 모히칸이 아니지만, 마지막에 남는 감정과 서사의 주인공으로 모든 것을 물려받는다. 땅, 서사, 감정, 정체성, 역사까지. 그러나 강압적 정복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그 대신 서사는 자연스러운 ‘전환’처럼 보인다. 살아남은 이가 계승자로 보인다. 계승은 싸움이나 정복, 쟁취 없이 이뤄진다.

 

   이 결말부의 구조는 백인이 원주민의 권리를 가져간다고 대놓고 뻔뻔하게 선언하지 않는다. 백인이 그것을 어쩔 수 없이 이어받았다는 식의 흐름으로 자연스럽게 구성한다. 계승은 원하지 않았지만, 정통 계승자가 사라졌기에 남은 자가 감당해야 한다는 식의 흐름이다. 이는 소유권 이전이 아니라, '의도하지 않은 권리의 부여'처럼 보이게 만든다. 이 배치는 가장 위험한 서사의 형식을 따른다. 강압, 폭력, 강요가 명시되지 않기 때문에 정당함이 부여된다. 감정선은 백인 주인공에게 있고, 원주민은 감정적 서사에서조차 주도적 위치가 아니다.

 

   이때 관객은 어떤 감정과 시선을 가지는가. 관객은 마지막 모히칸 운카스의 죽음을 보게 된다. 하지만 애도의 시선은 운카스나 츄잉가를 가족이나 동족을 바라보는 것과는 다르게 작용한다. 관객은 호크아이의 입장에서 죽음을 보게 된다. 제3자로서 감상이 문제다. 관객은 마지막 모히칸을 잃었다는 감정이 아니라, 남겨진 백인 모히칸의 고독을 감정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이 영화는 이상하게 3자의 시선과 백인 주인공만 덩그러니 남는 영화가 된다. 정체성의 중심도, 감정의 흐름도, 시간의 방향도 모두 백인 호크아이에게 관계된다. 관객의 감정 역시 그에게 철근처럼 깊게 고정된다. 이 영화는 모히칸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모히칸이 없는 영화, '홍철 없는 홍철팀'으로 끝나게 된다.

 

   이 결말은 하나다. 아무도 뺏지 않았고, 아무도 싸우지 않았지만, 모든 것이 백인 호크아이에게 남았다. 이야기는 또렷하게 말하지 않지만, 그 배열, 감정과 시선은 분명하게 말한다. 진짜 후계자 운카스는 죽었다. 남은 이 츄잉가는 곧 사라질 것이다. 그러면 누가 계속 살아야 하는가. 영화 '라스트 모히칸'은 정복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모히칸 멸족 이후 백인 호크아이에게 주어질 정당하고 부정할 수 없는 권리 승계를 말하는 영화다. 백인 구원 서사(White Savior)도 참 다양하게 표현한다. 존경스럽다.

마구아가 이렇게 생겼다면?

만약 '라스트 휴런' 마구아가 주인공이라면?

   영화의 시선이 바뀌면 많은 것들이 다르게 보인다. 주인공을 마구아(Magua)로 바꾸고 영화를 다시 만든다면 보이지 않던 새로운 것들이 보일까? 관객의 시점에서 판단 몇 가지, 선과 악의 구도가  반대로 진행될 것이다. 원주민화 된 백인이 아니라 원주민에 침투한 악한 백인으로, 마구아는 처절한 휴런족(Huron)으로 먼로 대령과 두 딸도 다른 시선으로 보이게 된다.

 

   마구아는 가족을 모두 잃은 후, 프랑스와 동맹을 맺고 영국과 그 협력 부족에게 복수를 다짐한다. 그가 택한 길은 전쟁과 정당한 복수다. 복수는 개인적 감정 해소만이 아니라 부족 질서를 회복하는 일종의 의례였고, 마구아는 복수를 통해 죽은 부인과 자식들을 기억하고 추모하고자 한다. 부족과 자신의 가족을 파괴한 영국군에게 돌려주는 같은 폭력은 정당한 부족의 전통적 행위다.

 

   반면 호크아이는 마구아의 복수를 ‘야만적 행위’로 간주하고 방해한다. 그는 스스로를 원주민과 같은 위치에 놓으려 하지 않는다. 묵묵히 백인의 사고방식을 원주민 세계에 끌어들여 자연스로운 침략을 시도하는 인물이다. 그는 피로 맺어진 원주민 복수의 방식을 무시하고, 백인의 정의를 내세운다. 호크아이는 복수의 명분을 빼앗고, 자신의 정의만을 유일한 기준으로 마구아를 방해한다.

 

   이 서사에서 관객의 시선은 출연자의 외형에 따라 강화된다. 만약 마구아가 강렬한에 잘 생긴 배우로 캐스팅되었고, 호크아이가 냉소적이고 냉혈한 인상을 주는 백인 배우로 설정되었다면, 관객은 감정적으로 마구아의 입장에 훨씬 쉽게 몰입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라스트 모히칸'은 호크아이의 시선이 아니라 '라스트 휴런'의 마구아의 시선으로도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끌어 나갈 수 있다. 백인의 윤리를 절대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면, 마구아의 선택은 무정부적 복수가 아니라 질서 회복의 서사로 보이게 된다.

마구아를 이렇게 했어야지

영화 속 프렌치 인디언 전쟁

   배경은 1757년, 북아메리카 현재의 뉴육주 북부, 어디론타(Adirondack Mountains) 산맥과 조지호(Lake George), 챔플레인(Lake Champlain) 부근이다. 당시 이 지역은 프랑스와 영국이 서로 식민지를 확장하려고 충돌하고 있었다. 이 전쟁은 '프렌치 인디언 전쟁(French and Indian War)'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프랑스와 일부 인디언 부족들이 연합하고, 영국과 다른 인디언 부족들이 또 다른 연합을 형성해 싸웠다. 이 전쟁은 7년 전쟁의 북미 전선으로, 유럽 대륙의 갈등이 대서양을 건너 미국 대륙까지 번진 형태였다.

 

   당시 프랑스는 캐나다와 미시시피 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내륙 무역권을 장악하고 있었고, 영국은 동해안을 따라 식민지를 운영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 두 세력이 점점 내륙으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충돌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전략적으로 중요한 허드슨 강 유역과 오하이오 계곡은 양쪽 모두에게 놓칠 수 없는 요충지였다.

 

   프랑스는 휴런(Huron)족을 중심으로 한 여러 부족과 동맹을 맺었고, 영국은 모호크(Mohawk)족과 더불어 모히칸(Mohican) 족과 협력했다. 그러나 원주민들 사이에서도 이해관계는 복잡했다. 같은 부족이라도 어느 편에 설지에 따라 분열되었고, 오랜 부족 간 경쟁과 감정도 얽혀 있었다.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모히칸 족과 휴런 족의 갈등은 단지 프랑스와 영국을 위한 대리전이 아니라, 자신들의 생존과 정체성을 걸고 벌이는 싸움이기도 하다.

 

   1763년 파리 조약(Treaty of Paris)을 통해 전쟁이 끝났다. 프랑스는 캐나다와 미시시피강 동쪽 지역을 영국에 넘겨주었고, 스페인은 미시시피강 서쪽 지역을 받게 되었다. 이로써 프랑스는 북미 대륙에서 사실상 물러났고, 영국은 대륙의 대부분을 지배하게 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북미의 인디언들은 큰 변화를 겪게 되었다. 파리 조약 이후 영국은 북미에서 서쪽으로의 영토 확장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영국은 식민지 개발에 집중하면서 인디언들의 전통적인 영토를 침범하게 되었고, 이는 인디언들과의 갈등을 일으켰다. 프랑스는 인디언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무역을 했지만, 영국은 식민지 개척자들이 많이 입주하였고, 인디언들과의 관계는 악화되었다. 

 

   영국은 1763년에 프로클라마션(Proclamation)을 발표하여, 앱팔래치 산맥을 기준으로 서쪽으로의 정착을 제한하려 했다. 이는 인디언들과의 갈등을 줄이기 위한 조치였지만, 인디언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영국의 식민지 확대에 반대하는 저항을 계속했다. 영국의 식민지 확대와 인디언들의 영토 상실은 결국 포키악 전쟁(Pontiac's Rebellion)이라는 대규모 반란으로 이어졌다. 1763년, 오하이오 강 유역의 인디언 부족들은 영국의 식민지 확대에 반대하며 일어섰고, 포키악 추장이 이끌었던 이 반란은 영국에 의해 진압되었다. 이후로도 끊임없는 인디언들의 저항이 이어졌다.

영화 속 주요 배경은 뉴욕 근방.

피부색는 힘이다: 한 번 백인은 영원한 백인

   북미 식민사에서 백인과 원주민의 경계는 결코 고정된 선이 아니었다. 납치, 입양, 도피, 합류를 통해 백인과 원주민 사이에는 수많은 정체를 다 정의할 수 없는 혼종이 형성됐다. 그런데 백인과 원주민의 혼혈에는 늘 이름이 붙었다. Half-breed, Mixed race, Mixed-blood 등. 이 호칭들은 그저 출신만 밝혀주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그들을 어떻게 구분하고 다뤘는지를 보여주는 나름의 의미가 있는 호칭이었다. 반면, 백인 혈통을 지닌 채 원주민 사회에서 살아간 이들에게는 딱히 호칭이 없다. 호칭이 없어서 원주민화된 백인이라 부르겠다.

 

   이들 '원주민화된 백인'을 위한 사회적 분류는 필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백인'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원주민 사회 안에서 성장했건, 언어와 관습을 공유했건, 심지어 백인 사회로 돌아가기를 거부했건 간에, 이들은 기존 백인 사회의 시선에서 완전히 타인이 되지는 않았다. '잃어버린 백인', '자연과 조화를 이룬 자유인' 같은 낭만적 이미지로 포장했다. 이는 영화 속 '호크아이'와 같은 캐릭터가 설명 없이 받아들여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호크아이는 원주민처럼 살지만, 혈통은 백인이다.

 

   실제 역사에서도 그런 인물들은 존재했다. 그러나 그들은 호칭이 아니라 서사적 정리 방식으로 처리됐다. 대표적 사례 세 가지를 살펴보자.

 

   메리 제미슨(Mary Jemison)은 1758년, 펜실베이니아 출신의 백인 소녀 메리 제미슨은 프랑스군과 쇼니족(Shawnee) 연합군 연합에게 납치 당했고, 이후 세네카족(Seneca)에게 입양되었다. 그녀는 세네카 이름을 받았고, 원주민 남성과 결혼하여 여러 자녀를 두고 살았다. 백인 사회로 돌아갈 기회를 여러 번 거부, 죽을 때까지 세네카 여성으로 살았다. 그러나 그녀는 ‘타락’이나 ‘배신’의 상징이 되지 않았다. 19세기 초 출간된 '메리 제미슨 부인의 이야기(A Narrative of the Life of Mrs. Mary Jemison, 1824)'에 낭만적이고 모성적인 원주민화 백인의 모델로 묘사되었다.

 

   허먼 레먼(Herman Lehmann)은 1870년 즈음, 텍사스에서 코만치족(Comanche)에게 납치된 백인 소년 허먼 레먼은 완전히 원주민 방식으로 살아갔다. 그는 사냥을 하고 전투에 참여하며, 코만치 이름을 얻고 ‘자신이 백인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릴 정도였다. 나중에 미군에 의해 강제로 되돌아 왔지만, 그는 평생 백인 사회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했다. 그는 '인디언들 사이에서의 9년( Nine Years Among the Indians, 1870-1879, 1927)'이란 자서전을 출간했다. 하지만 그는 '납치된 소년' 정도로 기억된다.

 

   존 태너(John Tanner) 1789년 9살의 나이에 쇼니족에 납치되어 오지브웨족(Ojibwe) 공동체에서 30년 넘게 살았고, 원주민 이름과 가족, 언어, 삶의 방식을 모두 갖췄다. 하지만 백인 사회로 돌아온 뒤 그는 ‘오지브웨로 살았던 백인’으로만 취급되었고, 양쪽 모두에게 완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그의 자서전 '원주민에게 잡힌 테너의 모험 이야기(A Narrative of the Captivity and Adventures of John Tanner, 1830)'는 오지브웨 사회에 대한 상세한 기록을 남겼다. 정작 그는 ‘오지브웨로 살아본 백인’으로 소비되었다. 

 

   백인 혈통이지만 원주민 문화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 사회적 호칭을 생기지 않았다. 이것은 무관심 결과가 아니라 선별적 수용의 결과다. 백인은 어디에 있든, 어떤 문화에 섞이든, 무조건 ‘우리 문화’로 돌아올 수 있는 사람으로 설정된다. ‘구별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문화는 동화될 수 있지만, 혈통의 동화는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혼혈 원주민'에 대한 호칭들과 '원주민화 된 백인'

호칭 설명 의미 성격 비고
Half-
breed
19세기 미국에서 가장 널리 사용된 백인-원주민 혼혈 지칭.
공식 문서에서도 사용.
행정적
공식 문서 사용
Mixed-
blood
대평원 및 북부 국경 지역에서 주로 사용.
모피무역 백인과 원주민 여성 사이 자녀를 지칭.
중립
대평원,
북부 국경 지대에서 사용
Squaw-
man
원주민 여성과 결혼한 백인 남성을 비하적으로 지칭.
원주민화된 백인이 아님.
비하
백인 남성 대상,
비공식 민간 표현
Breed ‘Half-breed’의 축약형
혼혈을 속어처럼 표현한 말.
비하
비속어 형태로 사용
Mixed race 보다 일반적인 표현
다양한 인종 혼합을 통칭.
중립
범용적 표현,
문맥 따라 다양하게 쓰임
Reservation Mixed 혼혈 원주민을 의미,
 '보호구역 내 혼혈'이라는 맥락으로 등장.
행정적
보호구역 관련 문서에서 사용
Agency
Indian
정부의 보호, 관리 대상인 원주민, 혼혈 원주민을 의미.
공식 행정 용어로 간헐적으로 사용.
행정적
정부와 연결된 원주민 대상 용어,
공식 문서에 사용
Adopted
White
원주민 공동체에 입양된 백인을 지칭.
회고록, 전쟁 기록 등에 등장.
중립
입양된 백인을 기술할 때 
Wild/Tame
Half-Breed
‘야생’과 ‘길들여진’으로 구분,
차별적 표현.
비하
문명화 정도에 따라 구분
인종차별적 분류 (4번)
원주민화된
백인
백인 혈통이지만 원주민 문화에 귀속된 경우.
지칭하는 고유 호칭은 없음.
없음
사회적으로 구분없음 

 

마구아는 피해자야

 

 

‘모히칸 족’은 사실상 영화 제작 당시엔 인구수가 많이 줄어든 상태였다.
모히칸족은 역사적으로 허드슨 계곡 일대에 살았으나, 대부분 19세기 중반 강제 이주로 사라졌다.
현존하는 종족은 Stockbridge-Munsee Band로 위스콘신에 소규모만 남아 있다.
영화에서 묘사된 충만한 전사로서의 이미지와는 다소 거리감이 있다.
마가 역 배우 웨스 스투디는 실제 체로키(Cherokee)족 출신이다.
인디언 캐릭터 연기가 아니라, 그는 원주민 언어,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캐릭터에 접근했다.
영화 내 대사 중 일부는 체로키어로 즉석 번역되었으며, 이는 자막에도 반영되지 않은 채 사용되었다.
실제 요새는 존재하지 않았고 전부 세트였다.
Fort William Henry 요새는 실제 위치가 아닌, 노스캐롤라이나의 블루리지 산맥 근처에 세트로 지어진 구조물.
세트 디자인은 실제 역사적 설계도를 참고하여 18세기 요새 구조를 재현한 것으로, 촬영 후 모두 철거되었다.
실제로 사용된 무기와 의상은 모두 박물관 수준의 고증을 거쳤다.
무기 제작자 웨인 왓슨(Wayne Watson)이 직접 당시 프랑스-인디언 전쟁 시기의 총기를 복제했다.
주인공들의 가죽 의상은 실제 18세기 북미 원주민 스타일을 바탕으로 수작업으로 제작되었다.
모히칸족에 특화된 음악적 테마나 리듬, 악기 사용은 전무하다.
민속악기의 사용도 스코틀랜드나 아일랜드적 전통에서 가져온 것이며, 북미 토착 문화와는 거리가 있다.

 

OST로 유명한 Promentory는 고독, 비장함, 운명적 결단 같은 정서를 강하게 끌어낸다.
스코틀랜드 반란사, 디아스포라, 고지대 저항서사에서 흔히 발견되는 정서 구조다.
북미 원주민의 애도, 전통 복수, 질서 회복과 같은 정서와 무관하고 백인의 영웅서사에 더 잘 부합한다.
음악마저 백인 구원 서사를 드러내는 부분.

 

https://www.youtube.com/watch?v=EaGTRm4s4rI

마구아는 극중에서 가장 복잡한 서사를 지닌 인물.
그러나 그에게 고유한 테마 음악이 없다.
심지어 등장하거나 복수를 결행하는 순간에도 마구아의 내면을 전달하는 음악 같은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