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와 춤을, 1990; Taylor Swift를 민첩한 재봉사로 부르면 안돼?
Šuŋgmánitu Tȟáŋka Ób Wačhí, 숭마니투 탄카 오브 와치
늑대와 춤을, Dances with wolves, 1990
다 아는 백인 구원자 이야기, White Savior 서사
케빈 코스트너(Kevin Costner)가 직접 제작하고, 감독도 맡았으며, 주연까지 한 영화 '늑대와 춤을(Dances with Wolves, 1990)'은 흔히 백인 구원자 서사라고 불리는 이야기 방식의 대표적인 예로 자주 언급된다. 이 영화의 배경은 미국 남북전쟁 시기로, 주인공은 백인 장교인 존 던바(John Dunbar)다. 그는 라코타 수우족(Lakota Sioux)과 교류하게 되면서 그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가는 과정을 겪는다. 이 영화에서 나타나는 화이트 세이비어(White Savior) 이야기의 특징은, 백인 주인공이 非백인 공동체에 들어가서 그 집단이 겪는 여러 가지 위험을 해결해주면서 동시에 자기 정체성을 되찾거나 깨닫는다는 흐름을 가지고 있다. 영화 속 던바는 라코타족에게 총기를 제공해 주고, 그 덕분에 라코타족은 경쟁 관계에 있는 포니족(Pawnee)과의 전투에서 이긴다. 또 던바는 버팔로 떼를 발견함으로써 공동체의 식량 문제를 해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 모든 서술은 백인이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원주민은 스스로 위기를 해결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뉘앙스를 대놓고 강조한다.
영화는 주인공인 던바의 정신적인 변화와 감정적인 성장과 성숙함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반면 라코타족 사람들은 던바의 변화 과정을 도와주는 보조적인 인물로만 등장하고, 스스로가 성장하거나 변화를 겪는 모습은 거의 묘사되지 않는다. 가령 'Ziŋtká Nagwáka, 진트카 낙와카(새를 차는 자, Kicking Bird)'나 'Pȟehíŋ Otȟáte, 페힝 오타테(머리카락 속 바람, Wind In His Hair)' 같은 인물들은 모두 던바가 더 나은 사람으로 바뀌는 데 필요한 조력자 역할에만 머물고 있다.
이 영화는 라코타족이 가진 문화와 언어에 대해 긍정적이고 존중하는 태도로 묘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문화는 온전히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던바라는 백인 인물의 시선과 경험을 통해서만 보여진다. 결과적으로 라코타족의 문화는 던바가 내면적으로 변화하고 영적으로 깨어나는 과정에서 배경 장치로 보인다. 이 방식은 원주민 문화를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왜곡하거나 대상화된 방식으로 소비하게 만든다. 영화는 백인 문명이 저지른 폭력성과 침략성에 대해 비판하는 듯한 장면을 포함하고 있지만, 던바라는 '착한 백인' 인물을 중심에 세움으로써 백인 관객이 느낄 수 있는 죄책감을 덜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즉, 던바가 원주민과 함께 살아가며 변화하는 이야기는 결국 백인이 과거의 잘못을 용서받고, 자기 혼자서 도덕적 구원을 이루는 판타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 마지막 부분은 라코타족의 공동체가 결국 백인 문명의 팽창으로 인해 사라질 운명에 놓여 있다는 점을 슬쩍 보여주지만 그러한 역사적 파괴에 대해 백인들이 집단적으로 책임을 지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영화는 식민주의가 만들어낸 폭력의 결과를 하나의 불가피한 역사처럼 보여주면서, 여전히 백인 중심의 역사 해석을 유지하고 지켜낸다.
늑대와 춤을.. 그래도 나름 멋진 모습도 보여줬는데..
영화 ‘늑대와 춤을’은 할리우드 영화사에서 북미 원주민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있어 몇 가지 중요한 변화의 계기를 보여준 작품이다. 이 영화는 이전의 서부영화들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라코타족의 실제 삶과 일상에 대해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특히 이 영화에서는 할리우드 영화로는 처음으로 상당히 많은 분량에서 라코타어라는 원주민 언어가 사용되었다. 당시로서는 매우 새로운 시도였고, 관객은 영어 자막을 읽으면서 실제 라코타어 음성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이 과정을 위해 라코타족 출신 교사인 도리스 리더 차지(Doris Leader Charge)가 영화 제작에 참여했고, 대본을 라코타어로 번역하며 배우들의 발음과 표현을 지도하는 역할을 맡았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원주민 역할을 맡은 배우들이 실제 원주민 출신이라는 점이다. 그레이엄 그린(Graham Greene), 로드니 그랜트(Rodney Grant), 탄투 카디널(Tantoo Cardinal) 같은 배우들이 주요 배역을 맡았는데, 이 과정은 과거 서부극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백인 배우들이 원주민 분장을 하고 연기하던 이른바 ‘레드페이스(redface)’ 관행과는 분명히 다른 방식이다.
영화는 라코타족의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제도나 의례도 함께 보여준다. 부족 공동체가 모여 결정하는 회의, 전통적인 사냥 방식, 결혼 관련 관습 같은 요소들이 영화 속에 나타난다. 이를 통해 라코타족의 사회가 그저 생존 단위가 아니라, 규칙과 질서를 갖춘 자기만의 문화요소를 가진 공동체임을 보여준다. 이전의 서부영화들이 원주민을 야만적 존재나 혹은 신비한 야만인이라는 방식으로 묘사해 왔다면, 이 영화는 그런 틀에서 한 걸음 벗어난 표현을 시도한 것이다. 실제로 이런 변화는 1950년에 나온 영화 ‘브로큰 애로우(Broken Arrow)’ 이후 약 40년 만에 등장한 것으로, ‘늑대와 춤을’은 다시 한 번 ‘선한 원주민’이라는 새로운 표현 방식으로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영화 ‘브로큰 애로우’는 그 시기 아카데미상 수상작으로, 당시에도 나름의 영향력을 끼쳤다. 그러나 ‘늑대와 춤을’이 나오기 전까지 수십 년 동안 만들어진 서부영화들 대부분은 여전히 북미 원주민들을 폭력적이고 거칠고 잔혹한 존재로 묘사하는 방식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영화에서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는 백인 정착민들이 버팔로를 무분별하게 대량 도살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백인 사회가 자연을 파괴하는 행위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반면 라코타족은 버팔로를 생존의 일부로 여기며 존중하고, 사냥 과정에서도 절제를 지키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 두 방식의 대비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윤리적인 문제 제기를 제기한다. 동시에 영화는 미국 정부와 군대가 원주민들에게 어떤 정책을 시행했는지도 일부 보여준다. 던바라는 인물 외에 등장하는 다른 백인 군인들은 잔인하게 행동하며, 원주민을 강제로 이주시키거나 그들의 문화를 없애려는 모습들이 그러한 시도들이다. 물론 이러한 장면은 영화 전체에서 매우 조금만 등장하지만, 일부 역사적 현실을 살짝 보여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
그래서, 원주민 구원자, Indigenous Savior는 없나?
'백인 구원자(White Savior)' 서사에 대한 대안으로 '원주민 세이비어( Indigenous Savior)' 서사를 다루고 싶어도 그런 영화가 거의 없다. 메이저 영화 중에서는 '라스트 모히칸(The Last of the Mohicans, 1992)'이 거의 유일한 비교 대상이다. 그런데, 이 영화마저도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다.
'늑대와 춤을'에서는 백인 주인공이 원주민과 함께 사는 백인 여성과 사랑에 빠지고, '라스트 모히칸'에서도 역시 주인공 백인과 구출되는 백인 여성의 로맨스가 중심이 된다. 인종 간 사랑을 교차 시키지 않는 방식으로 두 영화 같은 남자 백인 + 여자 백인의 동일한 이야기 방식을 보여준다.
'라스트 모히칸'에서 프랑스 편에 선 원주민들, 특히 마그와(Magua)는 지나치게 사악하고 잔인하게 묘사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들은 단지 프랑스와 동맹한 부족들일 뿐, 딱히 영국 편 원주민들보다 더 잔인하거나 非도덕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영화는 선악의 이분법을 통해 마그와를 악당으로, 칭가츠곡(Chingachgook)과 언커스(Uncas)를 선한 원주민으로 묘사한다. 언커스는 영화 후반부에 희생되고, 그의 아버지 칭가츠곡은 조연에 머문다. 이 영화도 백인이 백인을 구하는 이야기로 마무리 된다. 호크아이가 모히칸족에 의해 길러졌다고는 하지만, 그의 인종적 정체성은 여전히 백인이며 영화의 주인공으로서 백인 여성(코라)을 구출하는 역할을 한다. 원주민이 백인을 도와 다른 백인을 구하는 그런 내용.
'라스트 모히칸'은 '늑대와 춤을'의 '백인 구원자 이야기' 문제에 대한 대안이 되기는 조금 어렵다. 두 영화 모두 백인 중심적 시각에서 원주민 문화와 역사를 재현하며, 진짜 '원주민 세이비어' 서사를 보여주지 못한다. 메이저 영화들에서 원주민이 주인공으로 백인을 구원하는 서사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할리우드 영화 산업의 편향과 백인 중심주의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라코타족과 포니족의 전쟁, Lakota-Pawnee Wars
라코타(Lakota)족과 포니(Pawnee)족의 전쟁은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후반까지 수십 년간 이어졌다. 이 전쟁은 단순한 국지 분쟁이 아니라 생존 방식, 자원 접근권, 외부 세력과의 관계가 충돌한 복합적 갈등이었다. 두 부족은 모두 북아메리카 대평원에서 들소(bison) 사냥을 핵심 자원으로 삼았고, 동일한 사냥터를 공유하면서 반복적인 충돌이 벌어졌다. 19세기 중반에 이르면 충돌의 성격은 다툼 수준에서 전투 형태로 발전되었고, 양측은 극한의 대립 상태로 접어들었다.
포니족은 네브래스카(Nebraska)와 캔자스(Kansas) 북부의 미주리(Missouri) 강 유역에서 반정착형 농경과 들소 사냥을 병행했다. 이들은 계절에 따라 대규모 사냥대를 조직해 평원 지대로 진출했다. 하지만 19세기 초부터 천연두와 같은 전염병이 포니족 공동체를 급격히 약화시켰고, 군사적 방어력과 정치적 결속이 동시에 흔들렸다.
반면 라코타족은 18세기 후반 미네소타(Minnesota)에서 밀려나 대평원 서부로 진입하면서 기존의 농경 기반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고, 들소 사냥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생활 방식을 바뀌었다. 말과 총기를 빠르게 채택한 라코타족은 사냥 활동을 따라 이동하는 유연한 생활 방식을 취했고, 정착 마을 없이 이동형 거주지를 운영했다. 이 과정에서 라코타족은 샤이엔(Cheyenne)과 아라파호(Arapaho)와 군사적 동맹을 맺고, 미주리 강 서부의 들소 이동 경로와 주요 사냥터를 점령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 확장이 포니족의 계절 사냥 경로와 겹친다는 데 있었다. 특히 북쪽 평원과 리틀 블루 강(Little Blue River) 지역은 두 부족 모두가 들소를 사냥하러 진출하는 중요 지역이었다. 수백 명 규모의 사냥대가 같은 시기에 출몰하면 마찰은 피할 수 없었고, 실제로 1830년대 이후 크고 작은 충돌이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미국 정부는 이 문제를 부족 간 내부 문제로 간주하며 개입하지 않았고, 라코타족은 정치적 제재 없이 무력을 계속 사용할 수 있었다.
포니족은 방어를 강화하는 한편, 미국 육군과의 협력을 확대했다. 일부 전사들은 미군 정찰병(scout)으로 고용되었고, 부족 지도자들은 미국 정부의 중재에 의존해 라코타족과의 충돌을 회피하려 했다. 하지만 라코타족은 무역로 통제와 사냥터 확보라는 전략 목표를 포기하지 않았고, 군사적 우세를 앞세워 공격을 지속했다. 포니족은 점점 사냥대를 조직하는 것 자체가 위험해졌고, 1860년대에 이르면 대규모 들소 사냥을 사실상 멈추게 된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은 1873년 8월 5일의 ‘매서커 캐니언 전투(Massacre Canyon)’였다. 약 350명의 포니족 사냥대가 네브래스카 서부에서 들소를 쫓다가, 라코타족 기병대의 기습을 받아 많은 수의 포니족이 사망했다. 이 전투는 미국 정부가 기록한 마지막 부족 간 대규모 충돌이며, 이후 포니족은 집단 사냥을 완전히 멈추게 된다. 생존을 위한 사냥이 불가능해지자, 포니족은 군사적으로 미국 정부에 종속되었고, 거주 형태 역시 보호 구역 체제로 편입되었다.
라코타족은 이 전투 이후 대평원에서 군사적 우위를 얻게 되었지만, 곧 미국 정부의 직접적 공격 대상이 되었다. 붉은 구름 전쟁(Red Cloud’s War, 1866–1868)과 그레이트 수 전쟁(Great Sioux War, 1876–1877)을 거치며, 라코타족 역시 보호 구역으로 밀려나고 자치적 생활 기반을 잃게된다(DeMallie, 2001; Hyde, 1937; Wishart, 1979; Parks, 1989)
인디안. Native. 북미원주민. Indigenous
북미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을 부를 때 사용하는 여러 호칭들은, 그 시대의 역사적인 배경과 정치적인 의미를 함께 담고 있다. 유럽인들이 처음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자신들이 인도에 도착했다고 잘못 판단했고, 이 착각에서 원주민들을 "인디언(Indians)"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 잘못된 명칭은 오랜 시간 동안 그대로 사용되었고, 지금까지도 여러 글과 매체에 남아 있다. 이후 1960년대부터 미국 사회에서는 "아메리칸 인디언(American Indian)"이라는 용어가 비교적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1970년대부터는 또 다른 표현인 "네이티브 아메리칸(Native American)"이라는 명칭이 등장했고, 이 말은 미국 사회 안에서 원주민들이 이 땅에 가장 먼저 살고 있었다는 의미하는 것, 즉 선先주민이라는 지위를 인정한다는 의미였다. 캐나다에서는 "퍼스트 네이션스(First Nations)"라는 표현이 더 자주 사용한다. 이 용어는 그 땅에 정착하여 살던 사람들을 더 존중한다는 뜻이며, 캐나다 정부는 헌법상에서 원주민을 퍼스트 네이션스, 이누이트(Inuit), 메티스 (Métis)라는 세 집단으로 구분한다.
현재 공식적 영역에서는 "원주민(Indigenous peoples)"이라는 표현이 점점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 말은 국제연합(United Nations)에서도 공식 용어로 채택되었으며, 식민 지배가 시작되기 이전부터 각 지역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을 지칭하는 데 사용된다. 여기서 중요한건, 많은 원주민들이 일반적인 이름보다 자기 부족의 고유한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한다는 점이다. 나바호(Navajo), 체로키(Cherokee), 시우(Sioux)처럼 각 부족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그들의 문화적 정체성과 고유성을 인정하는 방식이라고 여겨진다. 원주민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에 대한 논쟁은 현재진행중이고, 미국 내에서는 "아메리칸 인디언(American Indian)"과 "네이티브 아메리칸(Native American)"이라는 두 용어가 동시에 쓰인다.
스미소니언 국립 아메리칸 인디언 박물관의 명칭만 보더라도, 공식 기관에서 여전히 "아메리칸 인디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원주민 공동체 내부에서도 선호하는 명칭에는 차이가 있다. 일부 사람들은 역사적 연속성을 이유로 "인디언"이라는 호칭을 수용하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이들은 이 용어가 포함하고 있는 식민주의적이고 차별적인 역사적 배경 때문에 그 사용을 거부한다.
"네이티브(Native)"라는 단어에도 몇 가지 짚어볼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 이 단어는 사전적인 의미로는 ‘토착의’ 혹은 ‘원래부터 그곳에 있었던’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 이 말을 사용하는 방식에 따라 '사람을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보일 수 있다. 그 지역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정할 수 있는 판단이 외부에 있는 사람에게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외부 세력이 원주민들을 '네이티브'라고 부르는 행위 자체가 지배층의 차별적 시선으로 보일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것이다. 미국 내에서도 "네이티브 아메리칸(Native American)"이라는 표현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가 있다. 이 명칭이 원주민을 미국이라는 국가 체제 안에 포함된 민족으로 보이게 만들며, 그들이 가진 독립적인 정치적 주권을 가리는 결과를 낳는다는 지적이다.
북미원주민 호칭
호칭 | 의미 | 사용 국가/지역 | 정치적 의도/맥락 |
인디언(Indians) | 콜럼버스의 착각으로 생긴 호칭 | 미국, 국제적 |
대륙 발견 초기 콜럼버스의 지리적 착각에서 시작,
식민주의적 기원 |
아메리칸 인디언 (American Indian) |
미국 내 원주민을 지칭 | 미국 |
1960년대 이후 공식 문서에 사용,
역사적 연속성 강조 |
네이티브 아메리칸 (Native American) |
미국 내 선주민을 지칭 | 미국 |
1970년대 이후 등장, 선주민 지위 인정,
미국 국가체제 내 존재로 규정 |
퍼스트 네이션스 (First Nations) |
최초 정착민을 의미 | 캐나다 |
원주민의 선주권(先住權) 인정,
이누이트, 메티스와 구별 |
이누이트 (Inuit) |
북극권 원주민 자칭 | 캐나다, 알래스카 |
자기 정체성 강조,
에스키모라는 외부 호칭 거부 |
메티스 (Métis) |
유럽인과 원주민 혼혈 후손 | 캐나다 |
독특한 혼혈 문화 집단으로서의 정체성 인정
|
원주민 (Indigenous peoples) |
식민지 이전 거주민 | 국제적, UN |
국제법적 지위 부여,
식민지의 역사 인정 |
부족명 (나바호, 체로키 등) |
자체 정체성 반영 | 해당 부족 지역 |
개별 부족의 문화적,
정치적 자율성과 주권 존중 |
네이티브 (Native) |
토착의, 원래부터 있던 |
일반적 용어 |
외부인과 원주민의 역사관계 함축,
식민주의적 시각 |
에스키모라는 호칭은 실례
예전에는 북극권 지역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을 지칭할 때 '에스키모(Eskimo)'라는 명칭을 자주 사용했다. 그러나 이 용어는 사용 자체에 차별적인 시선이 내포되어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에스키모'라는 단어는 알곤킨어(Algonquian)로, ‘날고기를 먹는 사람들’이라는 뜻을 가진다는 해석이 있었다. 이 해석은 북극권 원주민들을 문명화되지 않았거나 야만적인 존재로 간주하는 편견을 일으켰다. 뿐만 아니라, 이 용어는 북극 지역에 거주하는 여러 민족 집단을 한 덩어리로 묶어 부르기 위한 통합 명칭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 결과,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지닌 각 집단들의 고유한 정체성과 역사적 차이를 모두 무시하게 되는 문제를 일으켰다.
1970년대부터 캐나다에서는 '에스키모'라는 명칭 대신, '이누이트(Inuit)'라는 자칭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누이트'는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에서 ‘사람들’을 뜻하는 말이며, 이 명칭은 외부에서 부여된 이름이 아니라 자신들이 스스로를 부르는 이름이다. 이 시도는 자기 정체성을 자신들이 정의하려는 행위로 볼 수 있으며, 이름을 통해 정체성을 회복하는 움직임으로 보인다. 알래스카에서는 ‘이누피아트(Inupiat)’와 ‘유픽(Yupik)’처럼 지역마다 서로 다른 이름이 사용되고 있다. 이들은 '에스키모'라는 표현보다 자신들의 부족 이름을 우선시한다. 그린란드에서는 ‘칼라알릿(Kalaallit)’이라는 명칭이 사용된다. 이처럼 북극권 원주민들은 외부에서 강제로 정해진 이름이 아니라, 자기들이 정한 이름을 통해 자기 집단의 역사와 문화를 사회적으로 유지하고 인정받고자 한다. 캐나다 정부는 이러한 점을 반영해 1982년 헌법에서 이누이트를 공식적인 원주민 집단으로 인정했고, 이어서 1999년에는 이누이트 인구가 다수를 차지하는 지역에 대해 ‘누나부트 준주(Nunavut Territories)’를 설립함으로써 자치적 행정 단위를 구성했다.
북극권 원주민들의 호칭들
호칭 | 원어 의미 | 거주 지역 | 언어 계통 |
유픽 (Yupik) |
진짜 사람, 진실한 사람 |
알래스카 남서부, 시베리아 척치 반도 |
에스키모-알류트어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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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알래스카 유픽 (Central Alaskan Yupik) |
진짜 사람 | 알래스카 남서부 |
에스키모-알류트어족
|
시베리아 유픽 (Siberian Yupik) |
진짜 사람 | 시베리아 척치 반도, 세인트 로렌스 섬 |
에스키모-알류트어족
|
나우칸 유픽 (Naukan Yupik) |
진짜 사람 | 시베리아 척치 반도 동부 |
에스키모-알류트어족
|
이누이트 (Inuit) |
사람들 | 알래스카 북부, 캐나다 북부, 그린란드 |
에스키모-알류트어족,
이누이트어 지파 |
이누피앳 (Inupiat/Iñupiat) |
진짜 사람들 | 알래스카 북부 | 이누이트어 지파 |
칼라알릿 (Kalaallit) |
그린란드 사람들 | 그린란드 | 이누이트어 지파 |
이누비아루이트 (Inuvialuit) |
진짜 사람들 | 캐나다 서북부 북극해 연안 |
이누이트어 지파 |
추피 (Cup'ik) |
진짜 사람 | 알래스카 넬슨 섬 |
에스키모-알류트어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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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 로렌스 유픽 (St. Lawrence Island Yupik) |
사람들 | 알래스카 세인트 로렌스 섬 |
에스키모-알류트어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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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류트 (Aleut/Unangax̂) |
해안 사람 바다 사람 |
알류샨 열도, 알래스카 반도 |
에스키모-알류트어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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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낭간 (Unangan) |
해안 사람 | 알류샨 열도 동부 |
에스키모-알류트어족
|
우낭악스 (Unangax̂) |
해안 사람 | 알류샨 열도 서부 |
에스키모-알류트어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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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Chugach) 숙피(Sugpiaq) |
진짜 사람 | 알래스카 남부 챗캄 해협, 쿡 만 |
에스키모-알류트어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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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루티크 (Alutiiq) |
해안 사람 | 알래스카 코디악 섬 주변 지역 |
에스키모-알류트어족
|
북극권 원주민들은 평화롭고 차별이 없었을까?
북극권 원주민들의 스스로를 부르는 방식은 사회적 구분과 위계를 형성하는 세계관을 담고 있다. 이들이 자신들을 "진짜 사람들"로 부른 것은 인간됨의 기준을 자신들의 문화적 관행과 악습을 바탕으로 한다. 이 기준은 외형적 특징보다 행동 방식, 언어 사용, 사냥법, 의례 참여와 같은 문화적 행위를 기반했다.
북극권 원주민들이 백인들을 지칭한 '칼루나트(Qallunaat)'와 같은 용어는 구분을 넘어 공동체 규범에서 벗어난 행동을 나타내는 단어였다. 이 용어는 외부인뿐 아니라 공동체 내에서 규범을 위반한 구성원에게도 적용되어 행동 양식에 기반한 차별적 의미로 쓰였다. 원주민 집단들 간에도 유사한 구분 원리가 적용되었다. 외형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었으나 문화적 습성, 생활방식, 언어 사용에 따라 서로를 차별했다. 특히 언어적 차이, 방언 같은 경우는 의사소통의 문제가 아니라 정체성과 사고방식의 차이로 해석되었다. 방언이 다른 집단들은 서로를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로 규정했고, 이는 "제대로 사고하지 못하는 자"라는 판단으로 이어졌다.
북극권 원주민 집단들 사이에는 심각한 갈등과 전쟁이 있었다. 크리(Cree)족과 이누이트 사이의 전쟁은 17-18세기 허드슨 베이(Hudson Bay) 지역에서 장기간 지속되었으며, 두 집단 사이에 약탈과 보복이 반복되었다. 이 갈등은 유럽인들이 도착하기 전부터 이어졌다. 허드슨 베이 회사는 크리족에게만 총기를 공급하고 이누이트에게는 무기를 제공하지 않으면서 더욱 심화되었다. 무장한 크리족은 이누이트에 대해 우위를 점했고, 이누이트는 점차 북쪽으로 밀려나야했다. 알래스카 서부 지역 이누이트들도 사냥 구역과 이동 경로를 두고 충돌을 빚었다. 이는 외부자에 대한 대응이 아니라 동일 문화권 내에서 생활방식의 미묘한 차이가 경계와 적대의 계기로 작용한 사례다. 식량 자원을 둘러싼 경쟁은 공동체 정체성과 결합하여 집단 간 적대감을 일으켰다.
전쟁의 양상은 소규모 습격부터 조직적인 전투까지 다양했다. 일부 집단에서는 용맹한 전사를 존중하였고 한편으로는 전투 기술과 전략을 체계화 시켰다. 전사들의 전투 능력은 생존 수단을 넘어 정치적 지위와 연결되었으며, 젊은 남성들은 전투 참여를 통해 사회적 위치를 획득했다. 이들은 공동체 규범을 수호하는 상징적 역할을 담당했다. 적을 살해하는 것 외에도 포로를 노예로 삼거나 여성을 납치하는 행위가 있었다. 크리족과 이누이트 간 충돌에서는 살해한 적의 신체 일부를 전리품으로 가져가는 행위가 기록되어 있다. 이런 행위는 다른 집단에 대한 非인간화 인식을 잘 보여준다.
북극권 원주민 집단들은 타 집단에 관한 부정적 이야기와 신화를 발전시켰다. 이 구술 자료들은 다른 공동체와 집단에 대한 공포와 불신을 합리화하고 자신들의 문화적 우월성을 강화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이야기 속에서 타 집단의 행동 양식과 의례 관행은 왜곡되어 전달되었고, 반복적 학습을 통해 적대적 인식을 고취시켰다. 공동체 내부에서도 계층화와 차별이 존재했다. 사회적 지위는 혈통보다 능력제를 기반으로 했다. 사냥 기술, 환경 지식, 의례 참여 능력 등이 개인의 위치를 결정했으며, 공동체의 신뢰는 이런 능력의 지속적 발휘 여부에 달려 있었다. 능력이 부족한 구성원은 하위 계층으로 밀려났다. 북극권 원주민 사회가 항상 갈등 관계 속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집단 간 무역과 교류도 존재했으나, 기본적으로는 경계와 불신이 지배적이었다.
식민지 이전의 북극권 원주민 사회는 낭만적으로 묘사되는 평화로운 공동체가 아니라, 복잡한 정치적 역학과 집단 간 갈등을 포함한 사회였다. 이들의 차별 체계는 외형보다 행동 양식과 문화적 차별을 기반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북극권 원주민들의 역사를 설명하는 것은 원주민 문화도 뻔한 차별과 갈등의 역사를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북극권 원주민의 역사 역시 다른 지역의 집단, 민족, 공동체들이 가지는 보편적 갈등와 차별의 문제를 똑같이 가지고 있었다는 보여준다. 여기에 백인들의 문제가 더 추가된 것 뿐이다(Boas, 1888; Fienup-Riordan, 1990; Brody, 1975; Burch, 2005; Burch, 2007; Bishop & Lytwyn, 2007; McGhee, 1984; Stern,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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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들어가면 지구본을 돌려보면 남미, 북미, 북극권, 호주 원주민의 분포와 명칭을 살펴볼 수있다.
Hazel Smith는 '개암나무 대장장이', Taylor Swift는 '민첩한 재봉사'로 쓰면 안 된다고?
북미 원주민의 이름을 영어로 번역하는 방식은 대개 음차가 아니라 의미를 직역하는 형태로 이뤄진다. 'Tȟašúŋke Witkó(타슌케 윗코)'는 '미친 말(Crazy Horse)', 'Makȟá Zúta(마카 주타)'는 '쇠 나라(Iron Nation)', 'Tȟatȟáŋka Íyotake(타탕카 이요타케)'는 '앉아있는 소(Sitting Bull)', 'Hinmatóowyalahtq̓it(힌마토오와랄트킷)'는 '산에로 울리는 천둥(Thunder Rolling in the Mountains)'처럼, 이름을 구성하는 어휘의 뜻을 그대로 옮겨 적는 방식이다. 이 번역 방식은 이름을 고유명으로 존중하기보다, 이해 가능한 단어로 풀어 쓰는 것을 우선한다. 원주민 이름이 언어로서 가진기능, 즉 공동체 내의 위치, 개인의 역사, 상징 일부라는 점은 번역 과정에서 완전히 무시된다.
이름을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바꾸는 행위는 언어가 지닌 자기지시성(self-referentiality)과 사회언어학적 맥락(sociolinguistic context)을 철저히 무시하는 처리 방식이다. 이름은 단어가 아니라 담화 단위(discourse-level entity)에 속하며, 특정 공동체 내부에서 시간, 위치, 관계 속에서 기능하는 실질적 의미다. 이를 조합 가능한 단어들의 목록으로 복귀시키는 번역은, 언어를 형태소 단위의 기호 체계로만 간주하는 낡은 구조주의적 발상에 바탕으로 한다. 이 방식은 특히 지시 기능(denotative function)만을 강조하고, 사회적 지위 부여(indexical function), 정체성 수행(performance of identity), 의례적 호출(ritual invocation) 같은 이름의 다변화된 기능을 지우게 만든다.
문화비평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이름의 단위별 분석 번역은 대상의 상징 자율성(symbolic autonomy)을 제거하고, 그 상징을 상대의 것이 아니라 이해 가능한 대상(object of comprehension)으로 전환시키는 일방적 구타와 같은 행위다. 이름을 번역한다는 것은, 사실상 타자의 자기 서사를 외부 기준으로 ‘편입 가능한 이야기’로 재조직하는 것이다. 특히 ‘앉은 소’, ‘하얀 소 여자’, ‘용맹한 바위’처럼 해석된 이름들은, 본래의 공동체 내부에서 구축된 상징 자산(symbolic capital)을 제거한 채, 낯선 의미나 생소함을 기호적 이물감으로 바꿔버린다. 이 기호적 이질감은 대중문화에서 문화적 규범에 맞게 재정비된 대상화(coded alterity)로 소비되며, 의미 체계의 전복(displacement of semantic authority)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점은 이 문제에 대해 다수의 언어학자, 인류학자, 문화비평가들이 꾸준히 비판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주류 언어 문화는 이러한 비판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음소 중심의 로마자 표기 우선주의, 해석 가능성 중심의 번역 관행, 문화적 자기중심주의에 기초한 의미 복원 같은 체계가, 지금도 언론, 영화, 교육 현장에서 그대로 재생산되고 있다. 이러한 반복은 무지의 결과가 아니라, 인지된 무시(cognized disregard)의 형태로 봐야 한다.
영어권 문화에서 스미스(Smith), 테일러(Taylor) 같은 성씨는 원래 각각 '대장장이', '재단사'라는 직업에서 유래했다. 그러나 만약 미국인 로즈 스미스(rose Smith)를 한국어로 '장미 대장장이'로 번역한다면, 미국인들은 즉시 이를 자신들의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침해로 여길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인 '이용철(李龍鐵)'을 'Plum Tree Dragon Steel'로 번역하거나,
안지혜(案智慧)를 'Peace Wisdom'으로 번역 하는 것은 큰 실례다. 이는 이름의 고유성을 박살내는 행위로 강력히 비난 받을 것이다. 서구인들은 자신들의 이름이 의미의 대상이 되는 것을 철저히 거부하며, 이름은 음성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자신들에게만 적용한다.
반면 원주민의 이름은 처음부터 의미 분석의 대상으로 취급되어 'Íŋyaŋ Ohítika(잉얀 오히티카)'는 '용맹한 바위(Brave Rock)', 'Íhaŋktȟuŋwaŋ Bdaska(이항크툰완 브다스카)'는 '넓은 땅 끝에 사는 자(Flat Sioux)', 'Ptesáŋwiŋ(프테상윈)'은 '하얀 소 여자(White Buffalo Woman)'처럼 단어의 의미만 남는다. 번역된 이름은 대중 문화에서 흔히 재미있는 이름 정도로 소비 된다. 영화나 만화에서 '검은 늑대(Šúŋgmanítų Sápa, 슝마니투 사파)', '큰 구름(Maȟpíya Tȟáŋka, 마피야 탕카)' 같은 이름은 진지하게 사용되기보다는, 이질감이나 과장된 인상을 주는 장치로 기능한다. 이런 번역된 이름들이 서구 문화에서 진지하게 존중받지 못하는 이유는, 처음부터 그들의 소비를 위해 변형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름은 한 사람이 자신의 문화와 시간 속에서 어떻게 위치하는지를 나타내는 중요한 표식이다. 이름은 그 사람의 정체성, 가족의 역사, 공동체의 가치를 담고 있는 문화적 보물이다. 원주민 이름을 다룰 때는 무엇보다 그 발음과 원형을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 'Tȟatȟáŋka Íyotake'를 '앉은 소'로 번역하기보다는, 원어 그대로 '타탕카 이요타케(Tȟatȟáŋka Íyotake)'로 표기하고, 필요시 의미를 설명하는 방식(Sitting Bull)로 다시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원주민식 이름 번역하기가 재미있다면 똑같이 우리 이름이 영어 단어로 바뀌고 웃음거리가 될 때 뭐라 반박할 것인가?(Silverstein 1976; Basso 1996; Bauman & Briggs 2003; Irvine & Gal 2000; Gal 2015; Hymes 1974; Bourdieu 1991; Appadurai 1996).
Tȟašúŋke Witkó(타슌케 윗코)를 양키들이 이해하는 방식
해석 관점 | 영어식 이름 (의역) | 한글 의미 |
직역 | Crazy Horse | 미친 말 |
의례적 해석 | Ritual Horseman |
의례에 참여하는 기수
|
은유적 표현 | He Who Rides in Madness |
광기 속을 달리는 자
|
정신적 상태 | Spirit-Touched Rider |
혼령에 감응한 기수
|
문화적 상징 | Horseman of Sacred Madness |
신성한 광기를 품은 기수
|
서사적 재구성 | The One Who Gallops Through Visions |
환상 속을 질주하는 자
|
전사 정체성 강조 | Battle-Maddened Warrior |
전장에서 광기에 사로잡힌 전사
|
동물+인격 통합형 | The Horse Who Knows No Master |
야생마을 따르는 자
|
비전 상태 강조 | Thunder Rider of the Spirit World |
저승에서 천둥처럼 달리는 자
|
신화적 상징 | Chosen One of the Wild Horse |
야생마에게 선택된 자
|
늑대 '투 삭스'는 두 마리였다.
영화에 등장하는 늑대 '투 삭스'는 실제로 '벅'과 '테디'라는 두 마리의 늑대가 번갈아 연기했다.
케빈 코스트너의 딸이 출연했다.
케빈 코스트너의 6살 딸 애니 코스트너(Annie Costner)는 여주인공 'Stands With A Fist'의 어린 시절을 연기했다.
'Stands With A Fist(주먹 쥐고 일어서)'라는 이름은 원주민 원어로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원주민 문화 존중과 화해를 주제로 한 이 작품에서 원주민 이름은 오직 영어 번역 형태로만 나온다.
영화의 초기 예산은 약 1,500만 달러, 제작 중 예산을 초과하자 케빈 코스트너는 자신의 돈 300만 달러를 투자했다.
이 투자는 약 4,000만 달러의 수익으로 돌아왔다.
제작비 절감을 위한 소품 판매.
후반 작업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영화에 사용된 소품과 의상을 판매했다.
넓어 보이던 초원, 사실은 목장 하나였다.
영화에 나오는 광활한 평원과 버펄로 떼 장면은 전부 사우스다코타에 있는 ‘트리플 U 버펄로 목장’ 한 곳에서 촬영.
목장 하나로 대륙 전체처럼 보이게 만든 셈.
라코타족 마을 세트는 실제로 지어서 수개월 동안 유지했다.
대부분의 촬영이 외부에서 이루어진 데다, 수족 마을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므로 그때그때 설치하지 않았다.
기후까지 고려하면 지속 가능한 야외 세트를 고정적으로 운영했을 가능성이 높다. 제작비도 부족했다.
버펄로 떼 장면은 드론 대신 헬리콥터와 트럭 10대로 촬영.
버펄로 사냥 장면은 드론이 없던 1990년대 초, 헬리콥터와 지상 카메라 7대, 트럭 10대, 말을 탄 원주민 배우 24명.
그리고 버펄로를 몰기 위한 인원 20명을 동원해 찍은 대규모 실사 촬영이었다.
이름이 ‘늑대와 춤을’?
라코타족은 사람의 행동을 보고 이름을 붙인다.
던바가 혼자 늑대와 어울려 노는 걸 보고 ‘늑대와 춤을’이라는 이름을 줬다.
Šuŋgmánitu Tȟáŋka Ób Wačhí
숭마니투 탄카 오브 와치
'늑대와 춤을 추는 자'라는 뜻이다.
라코타어 원어 | Šuŋgmánitu Tȟáŋka Ób Wačhí | 늑대와 함께 춤추는 자 |
직역 | He dances with the great wolf | '그는 큰 늑대와 춤춘다' 문법적 해석 기준 |
이름 형태 | Dances with Wolves | 영화 제목 이름처럼 의역된 형태 |
상징적 해석 | One who moves in rhythm with the wolf | '늑대와 함께 리듬을 나누는 자' 공동체적 조화 강조 |
의례적 해석 | He who partakes in sacred movement with the wolf | ‘늑대와 함께 신성한 움직임에 참여하는 자’ 의식적 의미 |
동행 해석 | He walks alongside the sacred wolf | '늑대와 함께 길을 걷는 자' 춤을 이동, 여정의 은유로 해석 |